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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주 Nov 01. 2022

풋내기 암 환자

2022년 9월 28일  

결국 그 말을 듣고 말았다.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셔야 될 거 같습니다." 


위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지 1년. 

건강검진을 했던 곳에서 위 말트 림프종이 의심된다고 말했을 때 그게 무슨 병을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곳 의사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도 몰랐다. 집에 와서 '말트 림프종'이란 말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그게 암을 뜻하다는 걸 알았다. 아 그런 거였어. 

3차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아직 암은 아니고 직전의 상태라고 했다. 일단은 위에 있는 균을 죽이는 제균 치료제를 먹고 추적 검사를 하며 1년 넘게 버텼다. 띄엄띄엄 만나는 의사는 말을 별로 많이 하지 않았다. 나를 보는 대신 컴퓨터 모니터를 3개쯤 켜놓고 열심히 이것저것 보고 나서 '네 됐습니다. 3개월 후에 봅시다.' 뭐 그 정도? 의사 한 번 만날 때 드는 진료비 2만천 원이란 걸 생각하면, 한 음절에 1,615원이 조금 넘었다. 그랬었는데 그날은 말을 많이 했다. 

'암세포가 줄어들지 않는다, 1년 넘게 두고 봤는데 이대로 둘 순 없을 거 같다,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자, 이 병의 경우 방사선 치료효과가 좋다, 전이된 곳이 없는지 보게 일단 CT부터 찍자' 등등. 못해도 100음절은 말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한 음절에 2백 원 정도? 오호~ 오늘은 가성비 좋은데?


암 치료를 시작하자는 말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대체로 이렇게 시시껄렁했다. 

특별한 호연지기 때문은 아니다. 이미 1년 전부터 각오를 했고, 다행히 내가 걸린 위암은 예후가 나쁜 편이 아닐뿐더러, 수술이나 항암 없이 방사선 치료만으로 효과가 좋다는 얘기를 읽었기에 배짱이 생겼을 뿐이다. 대체로 겁쟁이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스스로 생각해도 제법 쿨했다. 


한편으론, 아이러니하게도 천하무적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암환자인데 누가 감히 날 건드려 라는 생각.

말하자면 일종의 초강력 프리패스를 받은 느낌이랄까. 평생 묶여 살던 자잘한 의무와 소소하게 챙겨야 할 일상을 단숨에 외면해도 될 것 같은 기분. 


'오늘 저녁 반찬이요? 아우 제가 암이라서....'

'집안 대소사요? 어쩌죠 제가 암인데....'

'원고 마감이요? 어떡하죠 제가 암 치료 때문에....'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슬그머니 나왔다. 이거 좀 문제 아냐? 그래도 암인데 엄근진 해야지. 

난 왜 이 나이 먹도록 명랑 만화스러움을 버리지 못하는지. 

아니 어쩌면 두려움을 외면하기 위해 가벼움에 매달리는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암은 리트머스가 될 거 같다. 나의 바닥이 제대로 드러날 거 같은 예감. 후들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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