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서 더 뚜렷해지는 나의 색깔
혼자 살기 시작하고 나의 관심사는 오랫동안 '집을 꾸미는 일' 에 머물러 있었다.
본래 심각한 집순이라 누가 부르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 않는 성향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자의 뿐만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며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 집에 가구를 들이는 것은 옷이나 가방을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 있다.
우선 가구는 부피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처분하기 쉽지 않다. 옷은 입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을 하거나, 당근 마켓에 팔거나, 최후의 경우에는 옷장 깊은곳에 처박아놓고 모른척 할 수 있지만, 책상이나 서랍장 같은 가구는 배송과 설치부터 시간과 돈이 들고, 덩치가 크다보니 막상 놓아보니 우리집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가까운 역에 들고 나가서 쉽게 '당근'해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왔음에도 필수적으로 구입해야하는 가구들 외에는 어떤 가구를 사야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로 1년을 보냈다. 1년 동안 '소파' 하나의 품목만 가지고도 수백개의 제품을 찾아보고, 수십개의 배치를 고려하고, 가격을 비교했는데, 내가 사고싶은건 소파 하나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품이 마음에 들면 우리집에 비해 지나치게 크거나 작았고, 색감이 마음에 들면 너무 불편해보였고, 귀여운 디자인이면 가격은 절대 귀엽지 않은 식이었다.
결국 올해 초, 더이상 집을 애매한 상태로 두기 싫었던 나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명확히 두고 가구를 구매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나의 가구가 하나의 쓰임만 가지고 있지 않을 것
모듈가구로 배치를 다양하게 할 수 있을 것
유행하는 가구가 아닌 오래 쓸 가구를 살 것
내가 비싼 물건을 살 때, 주변 사람들에게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괜찮아, 관짝에 들고 들어갈 물건이거든."
우스갯소리이지만, 그만큼 오래 쓸 물건이라면 절대적인 가격보다는 기간에 따른 상대적인 가격을 생각하자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다행히 나의 취향은 지나치게 소나무라서, 오늘은 흰색을 좋아하다가 내일은 빨간색을 좋아할리는 없기에, 오래 쓸 자신이 있는 물건이라면 타협하지 않고 구매를 하기로 했다. 가격이든 디자인이 '적당해서'라는 이유로 구매를 하게되면 결국은 쉽게 질리고, 새로운 것에 쉽게 마음을 뺏기니까.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인 디에디트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30만원 짜리인데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9만원짜리 적당한 물건을 사면 결국 39만원을 쓰게 된다고.
물론 나는 아직 사회 초년생이고, 통장 잔고는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모든 물건의 가격을 따지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한 두개쯤은 큰 마음을 먹어봐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이번에 사게 된 가구 중, 관짝에 들고 들어갈 물건은 바로 사무엘스몰즈의 전신거울이다.
이전에 몇 만원을 주고 싸게 구매했던 전신 거울은 당근으로 팔고 이사를 왔기 때문에, 지금 집에는 전체적인 옷 매무새를 체크할 수 있는 전신 거울이 없었다. 이사 당시에는 아치형태의 거울을 사고 싶었는데, 막상 이사를 오고 보니 여러 가구의 위치를 자주 옮기며 집의 느낌을 그때그때 바꾸기엔 프레임 없는 아치 거울은 너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치거울은 내 마음에 정말 들었다기보다는 유행 때문에 시선이 가는 가구였기 때문에 결국은 다른 거울로 눈을 돌렸다.
재미없는 단순 직사각 형태가 아니면서도 튼튼하고 안정감있을것, 내가 산 주변의 가구들과 어우러질것, 거울의 폭이 너무 좁거나 넓지 않을것 등 내가 원하는 조건을 나열하다보니 장바구니에 담긴 수많은 거울이 지워져 나갔다.
그러다가 사무엘 스몰즈에서 전신 거울을 보게 되었는데, 그 거울을 본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 달 간을 고민하며 가격대가 조금 더 저렴한 것 중에 대체품은 없을지를 찾았다가 실패했고, 결국 12월 31일 연말 세일이 끝나기 전에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한 달여를 기다려 받은 거울은 탄성이 터져나올 만큼 예뻤다. 덕분에 2월부터 시작한 홈트에도 불이 붙는 중이다.
가구에 돈을 지불하는 일보다 어떤 카테고리의 가구를 사고 싶은지, 어떤 형태의 가구가 마음에 드는지, 왜 마음에 드는지, 어떻게 배치를 할 것인지 하나씩 따져가며 O표와 X표를 번갈아 치며 고르는 일이 내 취향을 더 뾰족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오늘의 집 어플이 여기에 정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기준들에 맞춰 고심끝에 고른 가구(소파, 그릇장, 모듈 책상)들이 서서히 집을 채우기 시작했고, 늦었지만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만에 집안 곳곳 내 취향이 더 묻어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집을 꾸미는 일은 단순히 예쁘거나 비싼 가구를 사서 배치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누리지 못했던 취향을 뾰족하게 탐색하고, 비교하고, 고민하고 최적의 결정을 조합하는 퍼즐에 가깝다.
집에서 더 뚜렷해지는 나의 색을 찾기 위해 가구로 맞추어둔 틀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소품이나 페브릭, 꽃 등으로 내 색을 더 뚜렷하게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