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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Jan 30. 2022

우리 또 만나, 나의 숲

마지막 출근하는 날

 

 숲으로 출근하는 마지막 날, 몇 걸음만 걸어도 등에 땀이 쪼르륵 흐르던 여름날부터 은행나무의 꼭대기가 조금씩 노랗게 물들어가던 가을 초입까지는 곰솔누리숲에서, 진한 햇볕에 칠면초가 붉게 타오르던 가을의 가운데서 소복이 내린 하얀 이불을 덮은 겨울까지는 갯골의 바다의 숲에서 계절을 걸었던 시간이 스쳐 간다.



곰솔누리숲의 내 마음대로 내 나무


 잘 있니? 곰솔누리숲! 숲에 근무할 때 내 나무라고 찜해두고 매일 출근 도장 찍었던 어린나무의 사진을 한데 모아봤다. 처음 만났을 때는 키도 작고 가지도 몇 개 없었는데, 점점 자라면서 몸통도 굵어지고 무성하게 가지와 잎을 뻗은 모습이 기특하다. 지금은 얼마나 자랐을까? 얼마나 멋지게 성장했을지 궁금하다.






 2020년의 두 계절을 숲에서 보냈다. 돈이 필요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곳에 배정된 것도, 곰솔누리숲과 갯골생태공원 두 군데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행운이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땅굴 파고 어두컴컴한 곳으로 들어가 끙끙 앓을 수도 있었을 텐데 숲에서 마음껏 숨 쉬고 기운차게 보낼 수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던 나무들, 풀들, 꽃들 덕분에 나도 더디지만 조금씩 잘 걸어왔다. 새로운 계절에 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마주 보고 있을까?






 근무를 마치고 부리나케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던 걸음을 돌려 갯골을 한 바퀴 돌아간다. 코스모스 살랑이던 자리는 꽃도 줄기도 내려앉아 온전히 땅이 되었다. 갯골의 가을 마스코트였던 붉은 칠면초와 나문재도 바싹 마르고 색이 바랬다. 퐁퐁 피어올라 풍성한 볼륨감을 자랑하던 갈대와 억새도 삐죽삐죽 솟은 줄기만 남았다. 울긋불긋한 물결 사이로 초록 한 줌 스며들었던 갯골이 단조로운 색과 단순한 선으로 채워졌다. 다가올 계절을 위해 한 박자 쉬어가듯 차곡차곡 안으로 에너지를 쌓는다.





 이제 진짜 집으로 가야  시간. 버스정류장에 다다라 무심코 들여다본 하수구 속에 어여쁜 아이가 피어있었다. 깜깜한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는 별빛처럼 무채색의 계절을 밝히는 꽃분홍 잎이 단박에 시선을 끌었다.


어떻게  안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싸늘한 날씨에  안은 조금 따뜻할까? 아니 오히려  추우려나? 누군가  너를 알아본 이가 있었을까? 궁금한   많지만  그게 중요한가. 고운 분홍 잎의 아리따운 꽃이 봄처럼 따스하기만 하다. 머지않아 찾아올 온기를 잠시나마 느껴본다. 숲에서 근무하는  오늘이 마지막이지만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날 테니, 우리 쿨하게 헤어지자.  만나, 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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