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네 향기가 났다. 벌써 네가 없어도 너의 향기가 어떤지 기억할 수 있게 됐구나. 너는 매일같이 빨래를 해 집 현관을 열면 섬유 유연제 향이 났다. 그건 너를 안을 때 내가 맡는 향이기도 했다.
우리는 시월의 마지막 날 즈음에 만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너는 반짝였고, 마치 그 공간을 네가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당당했다. 너는 날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고, 우리의 대화는 활기찼다. 내가 겪은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만난 이들 중에, 그 누구도 너처럼 눈부신 적이 없었다. 너를 물끄러미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왔다. 가만 있어도 올라가 있는 너의 입꼬리가 예뻤고, 진한 쌍꺼풀과 눈썹이 그림 같았고, 다른 사람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밤의 고속도로에는 우리 뿐이었다.
부산에서 함께 불꽃 축제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너는 이차선 도로의 한가운데로 달렸다. 실선을 넘다니, 네가 졸린 건 아닌지 걱정하는 나에게 너는 태연히 말했다. “근처에 마을이 있어서. 갑자기 고양이가 뛰어들면 피하려고.” 너는 그런 이유로 실선을—그토록 넘으면 안 된다고 배운 것을—무시하고 있었다. 그때 어쩌면 너는, 우리 사이에 평행하게 나 있는 실선을 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그은 적이 없지만 세상이 그어둔 선. 우리는 그 선을 무시했다.
둘 다 고양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밤이니까.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의 세상을 만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정말 하나도 닮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너는 초등학생 때부터 8년동안 운동을 해서 전국체전에 몇 번 나갔고, 나는 그냥 공부를 해서 공대에 다녔다. 같은 나이의 우리는 같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학교 뒷산을 뛰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 너와, 새벽 고요 속에서 비문학 문제를 풀던 나는, 대체 어쩌다 만났는지 신기할 정도로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 우리를 잇는 건 아무도 없는 밤의 고속도로,
불꽃,
파도 치는 바다,
별이 빼곡히 들어찬 밤하늘,
그 은하수 아래에서 잠드는 것,
그러니까—우주였다.
어디든 네 향기로 가득한 곳이면 나는 기꺼이 발을 내딛는다.
잘 말린 포근한 빨래 냄새와 짙은 시더우드 향이 나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