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베르겐-파리-서울
베르겐 공항으로 이동해서 차를 반납하고 파리 오를리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오를리 공항에 도착한 후 두 사람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시간에 정든 두 명과 작별 인사를 하고 드골 공항으로 리무진 버스를 타고 떠났다.
이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다. 와이프가 돌로미티에서 산 코르크마개 인형들이 내가 만든 선반 위에 놓여진 사진을 보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조금은 변한 일상이겠지만..
한국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오는 편안함도 있었지만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을 자기 딸 대하듯 막 대하는 한국인 아저씨를 보았을 때 익숙한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의 추위에 떨다가 왔는데 한국 날씨는 후덥지근한 9월초 날씨다. 공항 리무진 버스에 짐 싣는 아저씨는 내가 당연히 짐을 실어줄 줄 알고 앞에 배낭을 놓고 서있으니 나보고 짐을 실어야 한다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럼 그 아저씨가 하는 일은 그냥 짐에 딱지 붙여주는 일인가보다.
같은 리무진 버스인데 오를리-드골 공항 리무진 버스의 짐 담당자는 당연한 듯 자기가 다 짐을 실어주었다. 프랑스 리무진 버스가 더 비싸긴 하지만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저마다 신경질적이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한다는 생각이 든다.
두 달 만에 집에 돌아왔지만 몇 일만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는 것 같은 익숙함이 느껴진다. 동시에 온 유럽을 헤매고 다닌 것이 마치 오래 전 일이었던 거 같은 낯선 느낌이 든다. 마치 군대에서 제대하고 느꼈던 것과 비슷한 기시감인 것 같다. 와이프와 한 달 만에 재회를 했다. 결혼하고 이렇게 오래 떨어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좀 걱정도 했는데 서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회사에 다시 출근하기까지 몇 일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빈둥거리며 쉬었는데 하루는 낮에 택배를 찾으러 경비실에 갔더니 처음 보는 경비아저씨가 택배를 찾아가려면 무슨 표딱지를 줘야 한다고 말한다. 전에는 그런 것을 요구한 적이 없었는데 그 사이에 뭔가 시스템이 바뀌었나 싶었는데 줄게 없어서 그냥 가져가겠다고 얘기했지만 막무가내로 뭔가를 내놓으라고 한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다 보니 경비 아저씨가 나를 택배 기사로 착각해서 반납 영수증을 요구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여행 다니면서 얼굴이 너무 타서 까만데다가 대낮에 와서 택배를 달라고 하니 나를 반품하는 물건 찾으러 온 택배기사로 생각한 것이다. 웃기지만 씁쓸한 오해였다.
여행 내내 되뇌고 다닌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처럼 여행을 다니면서 순간순간 겪었던 고통이나 힘들었던 순간들이 벌써 조금씩 희극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남은 내 삶에서 느끼게 될 고통들도 언젠가 희극으로 남게 될 때가 오겠지. 그때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자신의 인생의 막바지에 도달해서 내렸다는 결론처럼,
‘내가 고통 받았던 날들이 내 인생 최고의 날들이었다. 그때가 나를 만든 시간들이었으니까. 행복했던 때는 완전히 낭비였다. 하나도 배운 게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