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15>화와 <아티스트> 리뷰
마영신의 <아티스트>를 보면, 예술가들의 추함을 굉장히 명징하게 표현한다. 예술가는 창작해야하는 대상의 특성상 기본적으로 반사회적인 스탠스를 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 기성의 영역을 깨고 나아가는 진보의 영역인들, 추한 모습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런 모습은 예술품에서만 보이면 되니까...
아무튼 <아티스트>에서 곽경수는 굉장히 추한 남성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추함은 '예술가'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남성 예술가'여서 더욱 부각되는 점이 있다. 예를 들면 위와 같은 장면이라던가, 선배 예술가의 애인에게 밤에 몰래 키스를 시도한다던가 등등... 아, 오해 마시라. 이 글은 '남성'에 대해 비판하는 글이 절대 아니다. 인간이라면 고정된 신체의 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 관한 글이다. 그냥 내가 남자라서 남자의 상황만 공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쓴 거라구. 끝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에반게리온은 15화부터 슬슬 명작의 향기를 풍긴다. 이때부터 단조롭기만 했던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부여되고 그들의 복잡한 심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15화는 '성'에 관한 여러가지 관점을 담은 에피소드이다. 신지와 아스카의 애정없는 첫 키스라던가,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레이에게 호감을 느끼는 신지 등 '성'과 '애정'에 관하여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시야와 상황을 보여준다.
어쨌든 15화에서 미사토는 술에 잔뜩 취해 전 애인인 능구렁이 카지의 수염에 팔을 대며 투정을 부리다가 이런 말을 한다. (대사가 정확하진 않다)
'어쩌면 나는 너에게 비춰진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좋아했는지도 몰라'
'난 가끔 내가 여자인게 두려울 때가 있어.'
이 말을 듣고 카지는 조용히 미사토에게 입을 맞춰준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 느꼈던 건, 이름과 마찬가지로 성은 내가 정하지 않았는데 한 번 정해지면 바뀔 수 없다. 이게 성 항상성이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정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정해진 판단이 나올 때가 있다. 작중 미사토가 여자라서 카지에게 끌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걸 대부분의 시간은 간과하고 살지만, 마찬가지로 가끔 내가 남자인게 무서울 때가 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내가 '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때 두려울 때가 있다.
나의 상황으로 예를 들어보자
요즘은 일주일에 며칠을 제외하면 집과 회사만 반복하는 하루를 살고 있다. 가끔 헬스장 가거나 주말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환기를 시키긴하는데, 오래 산 기간 길다보니 집에 퀘퀘하게 묵혀있는 외로움이 배어있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다행히도 이제는 외로움에 자기 연민을 담고 있지는 않다. 적당히 즐기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은 이 외로움이 고독이 될 때도 있고, 한편으로는 이성의 부재로 인해 생기는 외로움일 때도 있다.나는 후자의 외로움을 느낄 때가 싫다. 자연스러운 것인데, 자연스러운 것이라서 싫다. 그 외로움을 느낄 때의 나는 너무나도 추하다. 이러한 외로움을 느낄 때는 왜인지 죄책감마저 들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걸 계속 가지고 있다간 곽경수처럼 될 것 같은 두려움도 든다. 즉 이성(異性)의 부재가 이성(理性)의 부재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에 빠진 인간이 될까봐 두렵다. 물론 다행히도 하룻밤 지나면 다 사라진다.
나는 요즘 웬만하면 내 감정을 인정하려 한다. 인정하는 순간부터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을 가지고 있어서 생기는 감정들은 좀처럼 인정하기가 어렵다. 누구에게도 잘못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친 적은 없는데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을 땐 항상 죄책감이 든다. 큰 해결 방법은 없다. 그냥 그럴 땐 앉아서 스타나 한 판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