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단상 모음
(1)
최근은 아니고 약 1년 전 어떤 친구들과의 술자리. 대화 주제는 진화과정과 인간 심리의 인과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충 과거 인간 번식에 관한 유전 내용이 현대의 인간 심리에 영향을 끼친다… 식의 주제였다. 결국에는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였지만.
한 친구의 말을 한 사례로 빌려 보겠다.
“왜 남자들은 전부 전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지 알아? 그 여성이 자기 가족을 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던 개체기 때문에, 후손을 생성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그리움을 느끼는 거래”
나름의 논리적인 유추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학에서 자주 일어나는 오류인데, 상관관계일 수는 있지만 인과관계로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무튼 당시에 집에 돌아갔을 때나, 오늘 갑자기 이 이야기가 떠올랐을 때나 내가 했던 생각은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면 사는 게 너무 시시콜콜하고 재미없지 않을까…”였다. 친구들의 논리는 세상 살기에는 직관적이고 명쾌한 논리라 큰 불편함은 없을 것 같다.
(2)
‘젊음’에 대해 반추해 보는 시기이다. 아직 내가 젊다고는 생각하는데, 슬슬 준비는 해야 될 것 같아서.. 요즘 들어 과거 톱스타들의 리즈시절을 보여주는 숏츠가 많이 눈에 띄어서 더욱 그러는 것 같다.
과거의 나도 더 오래된 과거를 그리워하며, 제대로 삶을 살아내지 못했던 적이 많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리즈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법이다. 실제로 문화비평서 ’ 레트로 마니아‘에서도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 커질수록 과거를 지향한다는 내용이 있다.
여담이지만 간혹 페이스북이나, 아이클라우드 등에서 내 10대 시절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땐 참 20대를 동경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놨었는데. 지금은 30대에 대한 어떠한 동경과 청사진도 없다. 그냥 나를 빨리 쳇바퀴에 앉혀두고 싶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이 잘못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3)
고등학생 때 독서실에서 밴드를 시작하기 전, 나는 어떤 밴드를 하고 있을까? 에 대한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검정치마처럼 찌질하지만 섹시한 1인 밴드? 아니면, 이스턴 사이드킥처럼 멋있지만 어딘가 찌질해서 더욱 빛을 내는 거친 밴드? 아니면, 3호선 버터플라이처럼 아방가르드한 인텔리 느낌의 밴드?
이 중 가장 가까운 상상은 언니네 이발관 같다. 음악보다 글로써 더 좋은 반응을 내고 있다는 점이나, 스스로 이런 이야기하기 좀 부끄럽지만 어딘가 뒤틀려있는 마인드셋을 갖고 있다던가.
무엇보다 본인이 본인 음악을 싫어하는 게 가장 큰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난 내 음악이 너무 싫다. 내가 만들어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다 뻔한 수가 읽히고 진부해 보인다. 항상 새로운 걸 듣고 시도해도, 결국 몇 번 들으면 거기서 끝이다. 그래서 항상 나는 내 음악을 들으면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차오른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또 어느 정도는 음악을 꽤 만드는 편인 것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 음악이 더욱 싫다. 열심히 만든 그 순간에만 행복하다.
내가 내 음악을 사랑해야지 다른 사람의 음악도 사랑할 수 있는 법인데 말이다. 그리고 내가 내 음악을 사랑해야 다른 사람들도 내 음악을 사랑해 줄 텐데 말이다.
(4)
간혹 한국 현대소설(1950년대 이후)이나 유명 문학인의 말투를 일상에 적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깊은 내 마음속 심연에서부터 묘한 거부감이 들어서 큰일이다. 아마도 그들의 부자연스러운 지적 허영심에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