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요양원에 다녀오시고 나서 문득문득 요양원에 대한 기억이 나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그 기분만 기억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종종 집안 곳곳을 만지고 손으로 쓸었다.
할머니 : 할아버지가 이거 제일 좋은 장 사온 건데. 자개장. 최고 비싼 장 사온 건데... 내가 복지관 돌아 댕기고 오랜만에 집에 오래 있으니까 새삼 예전이 그립네. 꾸질꾸질한 장만 쓰다가 최고 좋은 장 사온 날, 내가 얼마나 기뻤는데. 재밌는 추억이 많은 장인데. 이거 최고로 좋은 장인데... 너희 할아버지가 제일 좋은 장 사 오신 거야. 지금은 먼지가 케케묵고... 아이고... 이거 추억이 많은 장인데. 오래간만에 고향에 온 거 같네.
그렇게 몇 분이나 장을 쓰다듬고 만지고 먼지를 털고 나가셨다. 할머니가 갑자기 예전부터 써오던 가구나 물건들을 만지시며 추억을 회상하시는 것 같다. 치매에 걸리고 나서부터 모든 기억을 잊었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치매란 병은 치매 발병 이전의 기억은 안고 살아가고 현재의 기억을 잊는다. 그런 특징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현재를 잊으시니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일주일에 한 번 동네잔치를 집에서 열었다며, 할머니가 음식 하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안쓰러워하실 때가 많다. 하지만 할머니의 기억의 시간들 속에 힘들었던 일들은 추억으로 남았나 보다. 힘들게 잔치상을 차리고, 가족 중 누군가가 대학에 합격하고, 취업하는 과정 모두를 자개장에 품으신 것 같다. 할머니가 자개장을 오래오래 쓰다듬다가 힘없이 방에 누우셨다.
*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20대 손녀와의 동거 이야기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