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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무당 Feb 01. 2023

[멍멍왕왕] 돌고 도는 세대론(1)

: 세대라는 개념의 한계를 통해 세대는 등장하잖아요?

| '세대'라는 보편과 '세대원'이라는 특수


   쿠팡플레이에서 성공적으로 부활한 [SNL Korea]의 흥행작 <MZ 오피스>는 제목 그대로 오늘날의 MZ 세대를 풍자(라고 치고)적으로 모사하는 것을 유머 포인트로 삼고 있다. MZ 세대의 현신으로 취급받는 주현영 배우의 신들린 연기와 그 주변 인물들(맑은 눈의 광기, 대가리 꽃밭 등)은 MZ 세대 개별 특징을 선별적으로 강화한다. 고로 MZ세대의 꼬락서니를 보고 싶다면 이러한 인물군의 총체를 바라봐야 한다는 뭐 그런 설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헌데 이 '세대'라는 단위, 범위, 묶음, 분류 같은 것이 과연 의미 있는 개념일까. 언젠가 화제를 모았던 책 『90년생이 온다』에 대한 몇몇 반응들이 이러한 의문에 적절한 예시일 것이다. 책의 내용은 저자가 다년간 기업 인사 교육 업무를 진행하며 본인의 경험칙을 토대로 90년생의 특징을 목록화한 것이 핵심이다. 이는 기존의 사내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어딘가 어색한 90년생 세대군을 분별하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이와 같은 분별 작업 및 책 제목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90년생은 언제나 있었다'라는 문장이 대표적인데, 이에 더해 책이 꼽는 90년생의 특징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른 세대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책에 대한 비판에 힘을 실어주었다. '세대' 개념 짓기와 그 개념에 반대하는 공방 양상이랄까.


   이렇듯 ‘세대’라는 개념, 단위, 범위, 묶음, 분류 같은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갈등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MZ 오피스>역시  『90년생이 온다』 처럼 특정 세대 후려치기라는 비판을 받는 점이 그것이고.


   그렇다면 특정 세대라는 단위, 범위, 묶음, 분류 같은 것의 진짜 의미 찾기에 앞서, 개념을 둘러싼 시비와 찬반과 호오가 부딪는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본질은 아마 인류사와 함께한 보편과 특수의 갈등이 아닐까.



| 보편과 특수끼리 싸워서 뭐 해

    전체를 아울러 퉁치고자 하는 보편성은 그것의 반례라 할 수 있는 특수성을 통해 실패한다. 동시에 보편성을 부정하는 특수성은 보편성이라는 개념이 없으면 스스로를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스스로 보편성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뭐랄까 둘 다 상호적으로 절대적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호보완도 아니요, 상호대립도 아닌 애매한 지점을 지닌달까. 이렇게 보면 보편과 특수라는 것은 하나의 동일 개념의 두 측면이기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나머지 하나를 제거하는 식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곤란하고 말이다. 보편 없이는 특수도, 특수 없이는 보편도 존재할 수 없게 되니까.

보편과 특수가 서로 이러면 안 된다고-

   그래서인지 이 보편과 특수의 대립에 대해 배우신 분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중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 둘의 싸움에서 정말 주목해야 할 개념을 제시한 지젝의 '구체적 보편성' 개념이 되겠다.


    우선, 지젝은 보편과 특수가 상호 길항하는 관계를 취하지만 완전히 배타적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현실적 보편성은 특정한 정체성에 대한 부정성의, 자기 자신에게 부적절함의 경험으로 '출현'한다. '구체적 보편성'은 특수한 것과 좀 더 넓은 전체 사이의 관계, 특수한 것이 타인들 및 그것의 맥락과 관계 맺는 방식이 아닌 오히려 특수한 것이 자신과 과련 맺는 방식, 그것의 특수한 정체성 자체가 내부로부터 분열되는 방식과 관련된다.(1)


    지젝은 이와 같은 입장에서 헤겔의 '구체적 보편성' 개념에 주목한다. 결론적으로, 구체적 보편성은 좌절된 특수성을 의미한다. 지젝은 헤겔의 구체적 보편성 개념이 "자체 내에 보편성이 지각되는 특수하고 우연적인 점으로서의 독자-해석자의 주관적 입장[위치]을 포함하지 않고는 진정한 구체적 보편성일 수 없다" 점에서 독특하다 말한다. 즉 '나'라는 인식의 주체가 보편성과 마주했을 때 필연적으로 앓게 되는 특수한 우연성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것이 그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국가'라는 개념이자 존재가 '나'라는 주체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설득하지 못하는 것은, 비록 '나'가 '국가'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 둘이 관계 맺는 과정에서 '국가'는 '나'를 통해 대자적으로 반복되는 '나의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는 '국가'의 의도도 '나'의 의도도 어느 하나 만족시키지 않지만, 그럼에도 마냥 없는 셈 칠 수 없는 분명한 것으로서의 '나의 국가'가 새로이 개념화된다. 그렇게 "보편성은 오직 좌절된 특수성을 통해 또는 그것의 자리에서만 '대자적'으로 출현"하며 이렇게 출현하는 모든 보편성은 "'그 자체로 '그 자체로' 정립되는 모든 보편성은 이런저런 특수성에 난 상처를 여실히 보여주며 영원히 이 상처에 연관된 채로 남아 있다."(2)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구체적 보편성이 동사적 의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보편과 특수의 길항은 항상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다시 국가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봤을 때 그 개념은 "중립적인 보편적 개념을 예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투쟁하며 그것에 대한 어떤 비틀림을 부여하는 특수한 시도들의 과정이나 연속"(3)에서 드러나는 현실적 보편성이 '나'라는 주체를 통해 우연적이며 특수한 것의 반발이나 부정을 통해 생성 속의 보편성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구체적 보편성은 그의 주체론처럼 틈새, 구멍, 절단과 같은 해결되지 않는 무엇으로, 끊임없이 세계에 노이즈를 일으키는 것으로, 동사적인 상태로 활어처럼 끊임없이 팔딱거리는 것으로, 끝나버린 개념으로 중단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세대를 아우르는 세대론이라는 보편성은 그에 포괄되는 개별 세대원의 특수성을 통해 부정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세대론 개념에 포괄당하는 개별 세대원은 세대라는 보편적 개념 없이는 스스로의 특수성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점에서 다소간 무기력하지만, 이 보편과 특수의 화해도 아니고 매개도 아닌 어떤 단절에서 등장하는 구체적 보편성이라는 '주체'에 주목하는 것이 발전적인 태도라는 걸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게 무슨 정리냐ㅠㅠ



| 싸워서 뭐 하긴, 싸우면서 크는 거지


   이렇게 되면 특정 세대를 아우르는 세대론 개념을 마냥 밀고 나가는 것도, 그것을 마냥 부정하는 것도 영 편치 않은 모양새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세대'라는 개념을 약동케 하는 "부정성의 운동 자체"라는 구체적 보편성, 즉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무는 주체라는 단독자에 주목하는 것이 될 테다.


    이렇게 되면 세대론이라는 것이 매번 욕을 들어먹으면서도 끊임없이 갱신, 변주되는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기실 '세대'라는 것이 명사적으로 고정된 정보값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약동하는 동사적 차원에서의 구체적 보편성을 통해, 좌절된 특수성을 통해 데굴데굴 굴러왔고 또 굴러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고로 90년생이 온다는 식의 개념화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실패를 통해 다른 식의 담론이나 논의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그러한 과격한 보편 개념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특수성들이 생명력 넘치게 팔딱거릴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한 팔딱거림을 통해 '90년생'이라는 단순한 범주 너머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SNL Korea]의 <MZ 오피스>가 특정 세대를 모사하며 풍자인지 조롱인지 모를 후려침이 우려스러우면서도, 그러한 후려침이 있었기에 이전투구의 시공간과 존재들이 고개를 들 수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니까.(4)


    이렇게 적고 보면 '싸우면서 크는 거야-'는 식의 재수 없는 태도로 욕먹을 것 같고, 또 욕먹어도 방어할 마땅한 방법이 안 떠오르는 게 문제지만. 그런 식으로 반복과 번복이 인간 발달의 동력인걸 어째.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내가 또 흥미롭게 보고 있는 것은 [뉴진스]다.


    ..... 이야기가 또 길어진 관계로 다음 글에서 계속.



멍멍왕왕 안 끗!



1) 슬라보예 지젝, 『헤겔 레스토랑』, 650쪽.

2) 슬라보예 지젝, 『헤겔 레스토랑』, 650-651쪽.

3) 슬라보예 지젝, 『헤겔 레스토랑』, 173쪽.)

4) 미디어 오늘,「SNL ‘MZ오피스’, MZ세대 공감인가 조롱인가」,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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