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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무당 Feb 06. 2023

[멍멍왕왕] 돌고 도는 세대론(2)

: 결국 '조건' 보다 '누구'라는 것에 주목하게 될 지어니

| '세대'가 뭔지 설명 좀...


    개인적으로 '세대'와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준은 시대별 기술적 조건에 조응하는 인간 내용이라 여기고 있다. 그러니까 당대의 보편적 하드웨어들에 제각기 적응한 인간-소프트웨어의 보편적 수렴점이랄까. 여기서 인간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에 위치한 웨트웨어(wetware)(1)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웨트웨어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에 자리한, 도구와 개념과 물질을 필요로 하는 어딘가 모자라고 결함과 공백을 지닌 존재이자 그 모자람/결함/공백이 도구와 개념과 물질의 가능성을 발전시키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를 의미한다. 굉장히 양가적이고 모순적이지만 '긍정적' 의미의 존재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자.


    이런 기준에서 비춰보면 '세대'라는 것은 특정 연령대에 무조건 적용하는 것에 무리가 있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게 된다. 당대의 기술적 조건을 동시에 경험하는 특정 연령대라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동시에 그런 기술적 수혜라면 수혜를 모두 받아낼 수 없는 사람들도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당대성과 공통의 풍경은 그에 적응하는 특정 인간상, 다시 말해 '세대'를 분명 창출해 낸다. 그렇기에 '세대'라는 것은 보편성으로 분연히! 존재한다.


     이에 대한 예시가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명명일 것이다. 오늘날엔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던 시간을 단 한순간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실시간으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이제 사람들은 손쉽게 OTT를 통해 영화를 보기에 '극장'이라는 하드웨어를 절대화 한 글들에 공감하기 위해선 감수성과 같은 몇 가지 처리 과정을 끌어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당대의 기술적 조건에 인간 개개가 소프트웨어를 발달시킨, 조응한 결과로써의 '세대'다.


     그런 고로 세대라는 보편성과 개인이라는 특수성의 이전투구는 너무나도 자명한 결과이며, 그 끝에서 구체적 보편성이라는 것이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이는 인간이라는 웨트웨어의 숙명으로도 일축.. 하지 말자. 여하튼 넘어가서!



| 2G 폰과 에어팟 맥스의 공존


    기술적 조건을 '세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로 취급한다면, 최근 뉴진스가 보이는 매체 나열을 통한 시공간의 혼종적 제시는 꽤나 흥미롭다. 기술적 조건, 그러니까 매체와 이를 사용하는 존재의 만남을 통해 이 혼종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당장 <Ditto>의 뮤직비디오가 그렇다. 90년대 어드메를 막연히 지시하고 있지만 유튜브의 반희수 채널을 통해, 나아가 뮤직비디오 속 인물들이 지금-여기의 뉴진스 멤버들의 특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통해 묘하고 독특한 시공간이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2) 이뿐만이 아니다. 뉴진스 자컨(자체 제작 콘텐츠의 줄임말) 중 [NewJeans Bakery] 시리즈의 90년대 예능 프로그램 스타일을 모방한 오프닝이나, 최근의 2023 시즌 그리팅 영상들에서도 이런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살펴볼 것까진 없었고, 아래의 두 이미지만 보면 충분하다. ^ㅁ^   


2G 폰을 들고 있는 하니와 에어팟 맥스를 착용 중인 민지

    정리하면 '2G 폰과 에어팟 맥스가 공존하는 시공간' 되겠다. 물론 물건, 물질, 기술, 매체 등의 단순한 배치는 어떻게든 가능할 순 있다. 박물관 같은 공간이 그러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배치에 어떤 명분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뉴진스의 존재는 부각된다. 그러니까, 저 다소 과장적인 혼종적 시공간을 과장되지 않게, 말이 되게끔 하는 매개를 뉴진스 멤버라는 웨트웨어들이 수행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 큐레이션과 시퀀싱을 작동시키는 존재,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뉴진스.


    물론 요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명한 배경 하나가 또 있긴 하다. 돌고 도는 유행을 의미하는 복고라는 개념과, 요즈음의 복고라는 것이 2000년대 즈음을 의미하는 Y2K 시절을 지시한다는 것이 되겠다.



| 복고가 된 Y2K: 복고는 30년을 주기로


    근데 웃긴 건 복고라는 것에 대강의 기준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막연한 과거 일반이 모두 복고로 소환되기보다는, 대애애충 지금을 기준을 일정 정도의 시간적 거리에 위치한 특정 지점을 복고로 소환한다는 거다. 나는 요걸 이제 인간의 경제활동 순환과 연동시킬 수 있는 30년 주기로 바라보고 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 당대의 기술적 조건과 조응하며 의식적으로 자신의 경험칙을 쌓아가는 즈음은 10대 어드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업도 학업이지만 문화적 수혜를 온몸으로 돌파하며 흡수하고 소화시키는 바로 그 시절말이다. 이 구간에서 인간은 막연한 동경과 함께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를 동시에 경험케 된다. 가령, 자퇴하고 지금 당장 쇼미더머니 나갈 거 아니라면 힙합 음반 들어대며 내 안을 가득 채워대는 게 고작인 것에서 동시대에 참여하지 못하는 갈증이 요원한 상황 같은 거. 이런 시기를 거친 개개인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사회인이 되고, 사회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위치에 도달하면 30대 중후반 많게는 40대의 나이대가 되고 만다. 본격 관리자 위치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들의 지향점들을 이제야 이루고 말리라는 욕망의 발산.


    굉장히 처참한 비약을 포함한 이 연결과정을 생각해 보면, 결국 '복고'라는 것은 10대 시절 못다 한 자신의 취미와 취향이라는 문화자본을 사회활동이 가능한 시절에서야 풀어대는 것으로 정리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거다. 즉, 나의 기술적 조건의 배경이 되는 시절을 이제야 풀어본다는 세대적 살풀이.


    이에 대한 예시로는 90-00년대 락밴드 부흥의 배경에 6, 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나, 또는 소위 아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방송 [도시어부]에서 아재들이 알기엔 다소 난감한 드립들이 즐비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덕화, 이경규 님이 스타크래프트와 원피스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대중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던 10대들이 자라나 사회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자본을 가감 없이 뿜어대는 이 시공간의 혼합을 보라. 이는 게임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편견을 가진 세대가 사회 활동의 주축에서 벗어나고 그 자리를 게임 세대가로 채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요런 시공간의 혼합을 읽지 못하면 2015년 지미 키멜처럼 게임을 비하했다가 인구의 절반 즈음 또는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게이머 세대들로부터 식겁을 되는 것이다.)


    그런 고로 뉴진스가 다채로운 기술적 조건들을 이접시키며 제시하는 혼종적 시공간은 보편과 특수의 길항이 미처 포획하지 못한 공백과 틈과, 여튼 웨트웨어가 펼쳐 보이는 오늘날의 이미지라고도 볼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배경으로는 뉴진스 멤버들과 거진 30살 터울의 민희진 대퓨님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고. 이것 보라고. 여기도 30년 전후 차이가 자리하고 있잖아?



| "저한테는 이게 새로운 거거든요"

  

2018년도 MBC <라디오 스타>. 우원재는 레트로에 대해 "저한테는 이게 새로운 거거든요"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이러한 특징들을 고려한다면 '뉴진스'가 열어젖히는 시공간은 단순히 과거 지향적이기만 하지 않고 이를 기획하고 풀어나가는 대퓨님의 기획을 통해 재해석되고 확장되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뉴진스의 데뷔 곡 <Attention>에서 1세대 아이돌의 향수를 느낀 특정 세대의 반응을 통해, 그리고 이번 [OMG] 앨범의 방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일단 1세대 여자 아이돌이라는 것이 S.E.S와 핑클의 순정만화 같은 청순함에서 시작해 이에 대한 안티테제인 힙합 여전사의 등장이라는 서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뉴진스는 데뷔 앨범 [New Jeans]에서 [OMG]를 통해 1세대 아이돌의 흐름 전체를 발전적으로 반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


베이비복스와 뉴진스. 이를 통해 뉴진스가 무엇을 겨냥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좀 과장 섞어 말하자면, 뉴진스는 존재이자 시공간으로서 세대적 반복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2G 폰과 에어팟 맥스가 공존하는 시공간'을 작동시키는 존재로서의 뉴진스.


    이러한 지난하고 말 같잖은 비약 전개를 염두에 두고, 세대라는 보편성의 정의와 그에 속하는 특수로서의 세대원의 종횡무진의 결과에서, 우리는 구체적 보편성이나 단독성 같은 주체(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에 대한 예시로 뉴진스라는 모델을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뉴진스 멤버들이 오롯이 해낸 결과는 아님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특히 어도어가 현재 아이돌 문화에 가차 없이 던져대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아이돌은 협업의 산물' 같은 메시지를 염두에 둔다면, 뉴진스 멤버들 개별에 주목하는 것은 뭔가 과장된 입장으로도 충분히 비칠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뉴진스 멤버들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민희진 대퓨님의 기획, 그 기획을 토대로 구축된 어도어라는 회사는 결국 뉴진스라는 분명한 존재들을 거쳐야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2G 폰과 에어팟 맥스가 공존하는 시공간'을 작동시키는 존재는 누가 뭐래도 뉴진스 멤버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요렇게 되면 일전에 싸질렀던 멍청한 글 「청춘의 이미지는 무엇일까요?」의 결론에 한 가지 레이어를 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청춘물이니 학원물이니라는 장르적 정의(보편성)에서 개별 대상들을 소환하는 식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답습하기를 멈출 수 있는 단초 말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보편적 이미지를 새롭게 반복하는 재해석의 중심으로서의 존재, 구체적 보편성과 단독자의, 웨트웨어로서의, 그런 주체(성)에 대한 관심 말이다.


    이게 꼭 뉴진스만 할 수 있다는 건 아니고, 하나의 단초랄까 계기랄까 명분을 잘 제시하고 있기에 우리 모두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달까.




멍멍왕왕 끗.



1) 제프리 윈스럽-영, 「하드웨어/소프트웨어/웨트웨어」, 『미디어 비평용어 21 : 미학과 테크놀로지, 사회에 대하여』

2)  여기에 더해 얼마 전 뉴진스 <Ditto> 뮤직비디오에서 버니즈를 특정 인물화 한 반희수 유튜브 채널에 홈비디오 카메라로 제작된 <OMG> 뮤직비디오가 올라온 것도 언급할 수 있다. 이 뮤직비디오는 90년대 뉴진스와 같은 반 친구였던 반희수가 이제서야 뒤늦은 약속을 지켜낸 결과물이다. 그 시절 그때의 뉴진스에 보내는 비애감 젖은 뮤직비디오의 엔딩 크레딧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지금-여기의 뉴진스 멤버들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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