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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무당 Feb 02. 2023

[독서일기]지각적 리얼리즘(1)

: 리얼리즘도 어려운 마당에, 그것의 종류라니

(※『영화의 죽음: 포스트필름 영화의 존재양식에 대한 연구』, 조혜영)


| 지각적 리얼리즘: 진짜의 기준이 바뀜여


    필름이라는 매체(medium)가 지니는 지표성을 영화의 존재론과 직접 연결해 영화의 미학과 특정성 이론화한 역사 때문에,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한 필름의 소멸은 영화의 소멸과 직접 연결되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졌었다. 영화의 리얼리티 근원을 셀룰로이드 필름이 빛에 직접 반응하는 물리적 상호작용을 지표성 개념에 올인한 결과랄까. 그리하여 빛과 감광물질이라는 물리적 상호작용 없는 디지털 시네마에서의 리얼리티를 '지각'으로 이동시킨 '지각적 리얼리즘(perceptual realism)'은 지표성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영화이론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려온 것에 의문을 품는다. 


    지각적 리얼리즘은 영화의 지표적, 지시적 능력과 포토그램 차원에서의 운동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영화 이미지가 생성되는 전-영화적 조건이 아닌 그 영화 이미지의 효과에 주목하며 지시 대상의 존재 유무가 영화의 리얼리티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각적 리얼리즘은 시네마에 있어 필름의 매체적, 존재론적 의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지각적 리얼리즘 입장의 대표적 인물인 스티븐 프린스는 "뒤에서 거짓말을 하는 컴퓨터 이미지의 능력은 사실주의와 영화이론에 체화되어 있는 영화에 대한 전통적 가정에 도전"한다고 지적했다.(1)


    지각적 리얼리즘의 예시로는 <쥬라기 공원>(1993)이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시리즈를 들 수 있다. 실제 배우와 CGI가 영화 이미지 내에 매끈하게 합성되는 것을 넘어 '실사'의 영역은 캡처 장비를 통해 운동값으로만 존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필름-지표론과 철저하게 결별한 영화 이미지이지만 관객들은 여기에서 사진적 신뢰감을 표하는 게 그것이다.

공룡도 없고 나비족도 없고 실제 배우도 없지만, 우리는 영화 이미지가 제공하는 그럴듯함을 지각하며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데 프린스는 이러한 리얼리티를 지각적으로 담보하는 영화 이미지들이 그저 환영적, 담론적 사실 효과를 뿜뿜한다고 여겨선 안 된다고 말한다. 영화이론에서 비/사실적인 것의 경계가 고정적이지 않고, 디지털의 등장으로 그 경계가 더욱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며, 관객이 실제 세계의 시각적이고 사회적인 경험을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환기하며 이를 사실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람주체의 지각능력이 된다. 


    하지만 리얼리즘의 조건을 '지각'으로 옮겼다고 해서 지표성을 고집하던 전통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객의 지각적 조건이 리얼리즘의 근거가 되므로 필름, 디지털 가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달까. 


    사실 이러한 지각적 리얼리즘 입장은 초기 영화 연구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소비에트 몽타주 이론, 포토제니 이론 등이 영화를 운동과 빛의 예술임에 주목했던 것이 그것이다. 이는 필름-지표적 조건보다는 필름에 새겨진 이미지, 다시 말해 영화적 이미지의 운동 감각에 대한 주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 그러니까 영화의 제1 조건을 필름-지표론에서 영화 이미지의 지각적 차원의 사실성에 주목하는 것이 디지털 시네마 등장 이전 영화이론 전통에서도 찾을 있다는 흐름을 고려한다면, 지각적 리얼리즘을 통해 영화이론사를 다르게 정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볼 수 있다. 디지털 시네마의 등장으로 폭망하다시피 한 필름-지표론 리얼리즘 논의와 환영주의/사실주의 이분법을 아울러 볼 수단이 바로 지각적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 물론 문제점은 있기 마련


    물론 이 지각적 리얼리즘이 전가의 보도마냥 무적 필살기로 여겨지는 것만은 아니다. '지각'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영화 이미지의 효과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만큼 영화 이미지의 생산과정, 관객의 지각 과정이 괄호 쳐지며 디지털 이미지의 사실성이 다소 밋밋해지는 결과를 낳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문제점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지각적 리얼리즘은 이미지의 운동성에 주목하는 만큼 그 운동성이 자리하고 있는 '매체'에 대한 질문을 지운다. 사실 영화의 이미지라는 것은 '출력'의 결과인 만큼 그것의 입력 과정 역시도 영화의 존재론에 있어 제외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지각적 리얼리즘은 이 영화의 입력 방식에 대한 외면으로 영화 매체의 존재론(로도윅과 카벨의 용어로 하자면 자동기법)을 규명할 여지를 지워버린다. 이러한 특징은 영화 이미지의 시간성 측면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는 필름과 디지털이 이미지를 입력하는 방식에서 알 수 있다. 필름 이미지에서 출력되는 대상은 전-영화적 사건이라는 과거를 지시하면서 동시에 지금-여기에도 현존하는 이중의 시간성을 띨 수밖에 없다. 디지털 이미지는 전-영화적 존재에 대한 지시가 약화된 만큼 단일한 시간성을 통해 이미지 차원에서의 논의 기회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 결과 영화에서 운동성만큼이나 중요한 시간성이 자리할 매체적 고민은 사라지게 된다.


    두 번째로, 지각적 리얼리즘이 연속성(continuity)에 의한 환영 내에서만 디지털 영화의 사실주의를 설명한다면 영화이론으로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초기 영화이론들이 주목한 영화의 운동성에 주목해 지각적 리얼리즘을 고집하게 되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영화의 운동성'의 정체인 연속성이 포착하지 못하는 다양한 조건들은 리얼리즘의 논의에서 제외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지각적 리얼리즘을 통해 영화이론사 전체를 새로이 읽겠다는 목표는 어불성설이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지각적 반응만을 지각적 리얼리즘의 주요 효과로 퉁치지 않기 위해 물리적 조건이 생산되는 과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마노비치의 말처럼 디지털 시네마 시대에 돌입하며 영화가 키노-브러시라는 애니메이션의 차원에서, 후반 작업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여전히 고려되는 것은 현실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리얼리티의 획득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각적 리얼리즘을 통해 좀 더 풍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디지털)영화 이미지의 출력 결과만이 아닌 그것이 입력되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조건들(신체, 세계, 자아 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작 프린스를 직접 인용도, 요약도 하지 않았지만 지각적 리얼리즘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독서일기 끗.



1) Stephen Prince, 『True Lies Perceptual Realism, Digital Images and Film

Theory』, Film Quarterly 49:3 (Spring, 1996), pp.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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