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이거 Ditto 이야기이고 저는 버니즈입니다.
2022년 12월 19일, 뉴진스의 신곡 Ditto가 선공개되었다. Ditto는 2023년 1월 2일 발매될 싱글앨범 <OMG>의 수록곡 중 하나지만 2022년의 마지막 겨울을 버니즈와 함께하고 싶다는 뉴진스와 대퓨님의 깊은 뜻 덕분으로 선공개될 수 있었다.
Ditto 공개에 앞서 뉴진스 멤버들이 종종 곡을 설명할 때 '엄마 품 같은', '따뜻하게 안아주는'이라는 표현을 꼭 했었다. 그랬다. 그랬는데. 막상 공개된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엄마처럼 따뜻한 품은커녕, 데뷔한 지 몇 달 채 되지 않은 뉴진스와 팬덤에게 언젠가의 이별을 가불해 섧고도 처연한 감정이 들게 만들어댔다.
지금은 훌훌 털고 극복해서 하는 말이지만, 당시 Ditto 뮤직비디오를 모두 보고 난 뒤 시름시름 앓던 시기를 Ditto Blue라 나 혼자 명명할 정도로 힘들었다. 노래도 잘 못 들었다. 주책맞게 눈물이 나서 말이다. 뮤직비디오가 음악을 잡아먹어버린 상황이랄까. 음원을 먼저 들었다면 괜찮았을까? 하며 나 스스로의 우울에 놀라울 정도로 맘 아파서 곡을 못 듣겠더라고.
NewJeans don't Be Blue라고 했것만!
이런 점에 비춰보면 Ditto에는 음악과 MV라는 두 가지 갈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둘을 따로 또 같이 바라봄이 맞겠지만. '음악'의 측면에서 감히 추측해 보자면 뉴진스 멤버들은 '음악'을 중심으로 곡을 채워나가며 음악에 대한 각자의 이미지들을 쌓아 올렸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우리가 Ditto를 대하는 마음과는 결이 다른 '엄마 품 같은', '따뜻한' 곡이라 표현했지 않았을까.
다른 한 편으로 MV를 만드는 신우석 감독은 음악을 토대로 별개의 서사를 가져와 무려 두 편에 달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불특정 다수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버니즈를 반희수로 특정화하면서까지 뉴진스와 팬덤이, 나아가 한 개인과 개인의 인연이 극복할 수 없는 관계의 생로병사를 기어코 집어내는 이야기로 말이다. 관계의 필연적 한계와 종말이라는 비관 위에서 더욱더 찬란하게 빛나는 지금-여기에 집중하자는 이야기를 Ditto에 덧씌운 게 그거다. 나는 이 이야기가 Ditto라는 음악 자체를 잡아먹은 꼴이 된 것 같아 아쉬우면서도 좋고, 그러면서도 속상하고, 근데 또 좋고 그랬다.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신우석 감독님이 진짜 얄밉다 싶었던 건데, Ditto 뮤직비디오 side B에 등장하는 아래의 이미지 때문이다.
뉴진스 멤버들이 학교 옥상 아래 햇빛을 받으며 서로를 부둥켜안는 이 장면은 MV 서사의 상황적으로 건 이미지 그 자체로건 찬란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서 이 MV의 고약함이 또 작동을 하는데, MV가 가상의 시공간을 가정하고 있은들 등장인물 모두가 뉴진스 멤버의 본명을 쓰고 서로에게 거는 장난(빵사즈, 강고양이 등) 모두 현실의 뉴진스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저 장면 저거.
저거 저거 버니즈들이 보면 특정 순간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그런 장면이잖아.
2022년 8월 28일, EP 1집 마지막 음악방송에서 1위 한 날.
저 날이 참 소중했던 것은 EP 1집의 마지막 음악방송 활동이었던 것도 있지만 타이틀 곡이 아닌 Hurt를 부른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뉴진스 데뷔의 모든 것이 다 녹아있던 순간이라고까지 과장을 해도 모자람 없는 그런 날. 그렇기에, 어찌 보면 뉴진스 EP 1집을 상징하는 장면으로도 볼 수 있는 저 찬란한 순간을 신우석 감독 역시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안 들 수가 있나. 너무 예쁜 모습들이잖아.
하지만 이 장면은 (엄마품처럼, 따뜻한)Ditto라는 곡의 (비관을 전제한 아름다운) MV와 만나면서 뒤집힌다. 찬란한 영광의 순간이 망각될 비극의 순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극 중 뉴진스 멤버들과 친우관계를 맺고 있던 반희수가 어떤 결심으로 뉴진스 멤버들과 멀어지게 된 이후 등장하는 이 장면은, 정말이지 처음 보는 순간 억장이 무너지며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기 충분했다. 뉴진스와 팬덤에게 기념비적인 영광의 순간이 슬픔으로 전복되는 거, 정말 고약하지 않냐고. 추억으로 각인될 순간이 시간에 파묻혀 사라진다는 식으로 표현되는 거 너무하지 않냐고.
NewJeans don't be blue! 라면서!
다들 경험이 없더라도 들어는 봤을 그런 상황 있지 않나. 어릴 적, 엄마가 죽는 꿈을 꾸고 엉엉 울다 깼을 때 멀쩡히 살아있는 바로 그 엄마가 곁에서 달래주는 그런 상황. 언젠가 찾아 올 엄마의 부재가 엄습해 슬픈데, (꿈이지만 )부재했던 바로 그 존재가 지금의 나를 달래주는 아이러니 아닌 아이러니 같은 그런 거.
비유라는 게 참 위험한 게,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뉴진스를 이야기하면 '뉴진스가 엄마냐?'는 비아냥에 제대로 노출되는 거다. 내 참. 하여간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언젠가 사윌 관계의 생로병사 서사에서 우리가 체험할 수밖에 없는 비극의 극복은, 결국 그 관계의 힘을 통해서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하고 싶다는 거다. 그 극복의 정체라는 건, 앞서 반복적으로 말했지만 비관이 예정되어 있기에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힘!일 것이고.
그런 점에서 참으로 고맙고 얄미운 신우석 감독님의 Ditto로 인한 슬픔은 뉴진스 멤버들을 통해 극복돼버렸다. 극복당했다! 뉴진스와 버니즈라는 현실의 관계성이 그들의 음악과 MV라는 가상의 서사와 만나 애석하게 찬란한 비극이 되었지만, 이것이 극복되는 과정에서 현실의 관계성이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Ditto에서 비극과 망각의 순간으로 전용(轉用)된 뉴진스의 이미지의 찬란한 영광의 순간이 의지와 신뢰의 이미지로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수풀 속으로 사라지던 서로를 부둥켜안던 다섯 멤버들의 뒷모습이, 서로를 격려하고 독려하는 신뢰와 의지의 정면으로 부활 아닌 부활을 하게 됐다. 가역적 시간의 풍화를 이겨내는 것은 단단한 추억의 켜, 뭐 이런 말장난도 가능한 응집의 순간!
앞서 예를 들었던 아이의 악몽처럼. 팬들은 현실에서 뉴진스와 헤어진 적이 없다. 그저 MV 속 서사에서나 붙어지내다 헤어졌다 긴 시간 잊고 지내다 추억으로 소환했다 그랬던 게 고작이다. 이 가상의 악몽에 시달리던 팬들을 달래준 건 현실의 뉴진스라는 게, 뭐랄까. 알모를 힘을 준달까.
어찌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는 이 순간이 값지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신우석 감독님의 거짓 악몽덕일 수 있다. 나였다면 감히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악몽을, 아니 알모르게 감지하고 있었을 언젠가의 이별을 굳이 불러내지 않았을 그 악몽을 우리에게 보여줬기에 성장과 도약을 나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여하간 NewJeans와 그 팬덤은 당분간은 Don't be blue 할 예정이다.
멍멍왕왕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