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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은 Jun 16. 2021

[나의 이십 대 보고서 #9] 뒤끝이 얼마나 소중한데

지난해 12월부터 문화 공간을 준비해왔다. 정식 오픈을 앞두고 지난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프라이빗 오프닝 행사를 열었다. 가깝고, 가깝다고 생각한 지인들을 초대했다. 기대보다 많은 분들이 발걸음 해주셨고 공간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에 힘이 났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다 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텁텁하다. 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다. 온다더니 오지 않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입이 저절로 삐죽거린다. 그중에서도 초대에 거창하게 반응했던 이들을 떠올리면 그렇다. 초자아일까? 어떤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사정이 있을 거야. 이해해.’ 원초아인지 자아인지 모를 내가 내게 또 말을 건다. ‘두고 보자!’

 

이런저런 생각이 들다가 생각 끝에 기억이라는 단어가 맺힌다. 무더운 날에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와 준 이의 얼굴, 준비하느라 수고했다며 나의 어깨를 쓰다듬는 손, 바쁜 일정 중에 꽃다발 포장을 기다리는 마음, 예쁘고 멋진 옷을 꺼내 입고 걸어 들어오는 모습. 그 마음과 장면을 잊지 않으리라. 그리고 잊지 않을 것이다. 말은 거대하고 행동은 흔적도 없는 사람들. 약속을 가볍고 쉽게 버리는 사람들. 가슴에 텁텁한 기억을 남겨두어야 참 감사의 마음도 당연하지 않게 간직할 수 있겠다.

 

‘뒤끝’의 사전적 정의가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은 다음에도 여전히 남은 감정’이라는 데 뒤끝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게 무조건 좋은 것인지 스스로 반문해본다. 나의 뒤끝이 미래의 결정에 슬기로운 판단을 돕길 바란다. 과거의 아픔이 소중한 것을 한 번 더 쓰다듬을 수 있는 감사로 익어가길 소망한다. 사람을 무조건 믿지 아니하고 차라리 무조건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 거리를 둘 줄 아는 실력이 쌓이길 내가 나를 축복한다.

 

나 뒤끝 있는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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