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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하루 Jan 30. 2023

04_앗! 휴대폰이 TV보다 싸다

인간 가성비 측정기


머리가 크고 나서부터는 각 잡고 앉아 훈육시간을 가지기보다는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다툼들이 많아졌다. 스테레오 타입의 포맷이 식상해져 벌벌 떠는 아이대신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흐리멍덩한 눈을 가진 아이만 남았기 때문일까. 효과성이 떨어지는 훈육의 시간은 줄어들었고, 치미는 화에 분노를 표출하는 아빠와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는 당돌한 둘째 딸만 남았다.


이 방식에서는 일방적인 체벌의 턴이 주어지지 않기에 본인이 이만큼 화가 났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는 추가 장치가 필요했다. 물건을 던지거나 떨어틀이는 게 대부분이었다. 한 번은 본인이 지금 옆에 있는 베란다로 나가 아래로 떨어져야 할지를 질문하기도 했다. 화가 난 정도에 따라 부서지는 물건의 가격은 달라졌다.


하나의 밈이 되어버린 광고판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화라는 것을 중간에 깨닫기라도 한다면, 방바닥에 던지려던 손은 잠시 멈춰 조준 위치를 바꿨고 귀중품은 침대 위에 안착했다. TV를 가격하려던 손은 잠시 후 휴대폰을 던지는 데 그치기도 했다. 밖으로 표는 내지 않았지만 그 멈칫하는 몸짓이 속으로는 꽤나 우스웠다. 그 짧은 시간에 판단이 되는구나 하고.


같은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상황은 달라졌다.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는 별일도 아닌 일에 길길이 날뛰었다.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하는 날이면 정가운데 있는 찌개에서 퍼올린 숟가락 속 찌개국물을 너무 많이 흘린다며 부엌 바닥과 식탁에 젓가락을 내 던지며 호통을 치는 경우도 있었고, 거실 탁자에 쌓아있는 책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책들을 온 바닥에 쓸어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자리에 있는 모두는 급속도로 얼어붙었고 싸해진 분위기는 며칠 뒤에나 돌아왔다.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꿈꾸는 엄마의 노력과 아빠의 건망증은 겉으로 보면 화목한 집으로 곧잘 돌려놓았다. 사과나 진상규명 없이 어느새 스며들어 있는 화목한 분위기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집에 융화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며 툭 튀어나 보일 것을 알기에 혹시나 하는 행복회로는 열심히 돌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한계 스택(stack)은 쌓아 올라가고 있었고, 언제든 공포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아빠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꽤 큰 불편감을 느끼게 되었다. 또 그가 만든 불편은 그에 대한 불신과 회피를 낳았다.


스스로 ATM기가 되길 자처하는 아빠는 본인에게 오로지 돈만 남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름의 가성비를 측정하며 물건을 내던진 게 아닐까. 손에 있는 그것이 부서지더라도 화가 가라앉을 때면 본인 돈을 또다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머리에 스쳐간 게 아니겠나. 돈 생각에 분노가 강제로 하향조절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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