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는 위대하고 토이스토리는 아름다우며 우디와 그의 친구들은 어른들에게는 따뜻함을 아이들에겐 꿈을 준다.
영웅들을 찬양하는 것은 이렇게 쉽고 편안하다.
하지만 픽사라는 회사, 그리고 픽사가 만들어온 작품들은 건강하지 않다. 남성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왕국에서 남성 감독들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그저 남자 주인공들이 관심을 가지는 대상일 뿐, 중심에 서지 못해 왔다. 심지어 원작 시리즈에서 보핍은 그저 반짝이고 예쁜 도자기 인형.
아, Brave가 있다고? 무려 여성이 감독을 했던? 그 작품의 스토리 작가 겸 감독 Brenda Chapman은 본인과 본인의 딸의 이야기를 담아 Brave원작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픽사 높으신 남성분들께 맞섰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작품에서 쫓겨나야 했단다.
한편, 이 그지 같은 상황, 그지 같은 픽사에서 토이스토리 4는 정말 소중한 작품. 5년이 넘는 준비 기간 동안 "Team Bo", 최소 다섯 명 이상의 젊은 여성 멤버들이 항시 참여한, 보핍을 위한 팀은 정말 열심히, 필사적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지키고, 가꿔왔다고 한다. 초기 설정 등의 중요한 과정에선,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대상적 시선을 배제하기 위해, 가능한 남성 멤버들을 빼고 회의를 하기도 했다고 할 정도.
픽사의 작품들, 특히 토이 스토리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지, 아니, 그냥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인지는 나도 이번 작품을 보고서야 알았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으로 그려진 카우보이는, 사실 영웅도 뭣도 아닌 그저 멍청하고 맹목적으로 어딘가에 충성을 바치는, 충성의 목적과 이유를 설명할 수조차 없는 그런 녀석에 불과했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군대형 조직문화에 딱 어울릴. 그런 멍청함을 조금이나마 깨우쳐 줄 수 있는 것은, 똑똑하고 강한 양치기 언니였다. 멍청함을 의리라며 박수 쳐주는 멍청한 마초와 고만고만한 주변 캐릭터들이 아니라.
"팀 보"의 노력과 보핍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나 또한 그 이면을 보지 못한 채 토이스토리 3부작을 좋은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카우보이와 우주비행사가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의 꿈과 추억을 기억시켜준 그런 고마운 작품으로.
보핍, 그리고 그녀를 있게 한 많은 스태프들에게 감사한다. 거짓으로 따뜻하게 치장된 추억이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