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구 Jul 11. 2019

폭력의 제물로 표현되는 여성들

Stranger Things 3 ep1, 2 (기묘한 이야기 시즌 3)

**많지는 않을 겁니다만 그래도 어찌 스포일러가 전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아내와 나 모두, 최근에 꽤나 바쁘긴 바빴었나 보다. 기묘한 이야기가 넷플릭스 개봉을 했음에도 바로 시작하지 않고 이틀이나 미뤘더랬다. 예전 같으면 이틀 안에 시즌을 모두 끝냈을 텐데 (...) 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이미 개봉한 핸드메이즈테일 시즌3 뿐 아니라 종이의 집 시즌 3에 빅 리틀 라이즈 시즌 2까지 쏟아져 나올 예정인데, 조금 바쁘다는 핑계 따위로 마냥 미루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오오, 재미있더랬다. 지난 두 시즌과 비슷하게 초반에는 큰 사건 없이 대형 사고의 전조들만 슬쩍슬쩍 보여주는 데도 빠르고 쫄깃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그런데.


에피소드 2 중후반쯤 아내가 말했다.

"뭐야, 쳇, 제물이야?"

아, 그러게, 무릎을 탁 쳤다.


Stranger things  시즌 3 에피소드 1, 2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적어도 세 차례 - 혹은 세 가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우선은 낸시가 일하는 신문사. 탐욕스럽고 게으르고 무례한 남성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하급직 여성들. 남성으로 채워진 이 공간에서 여성들은 전화를 받고 점심을 나르는, 농담과 조롱, 그리고 희롱의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 장면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 공간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 그리고 주인공 중 한 명인 낸시가 어떻게 용감하게 기회를 잡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두 모습 - 빌리의 경우는 앞의 낸시의 케이스와 무척 다릅니다. 에피소드 2에서 빌리는 두 명의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 두 사람 모두 빌리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일 뿐 아니라 그에게 어느 정도 이상의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었습니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육체적/성적 폭력의 상당 수가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구나 지인들 - 즉,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하지만 빌리의 폭력 행사 장면은 어떠한 비판 의식 없이, 그저 두 상대가 육체적 약자라는 가정 하에 쉽게 연출됩니다. 게다가 두 장면 모두 등장인물들은 수영복을 입고 있던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없을 때 벌어지는데, 이는 다른 도움 (타인이든 무기가 될만한 물건이든)으로 부터 격리된 공간에서 여성은 남성의 폭력의 대상일 뿐이라는 시선의 반성 없는 표현일 뿐입니다.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를 고른 것뿐'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우선, 빌리는 기본적으로 셉니다. 쌈박질 엄청 잘합니다. 게다가 괴물이 달라붙어, 와방 더 세졌습니다. 그저 '상대적으로 약한 상대'라고 하기에는, 동네에 있는 대부분의 상대가 빌리보다 약합니다. 게다가 노약자나 어린애들, 동물들까지 포함하면 빌리가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상대는 꼭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두 여성이 아니어도 충분히 많이 있지요. 여성에 대한 폭력과 달리, 어린애들에 대한 폭력은 방송으로 내보내기에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게다가 다른 장면에서 빌리는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는 대신 수면제 등을 이용합니다. 굳이 앞서 기한 두 장면에서도 주먹을 사용하는 연출을 할 필요는 없었지요.


게다가 빌리는 두 피해자 중의 한 명 - 히더 - 을 줄로 묶어 '제물'로 바칩니다. 폭력의 행사에서 납치, 제물로 바치는 장면까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은 그저 음산하고 긴장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자연스럽게 지나가지요. 하지만 이후에 장면에서 히더는 빌리의 조력자로 활약합니다. 물론 '스토리를 위한 연출'이라고는 하더라도, 너무나도 당연한 폭력에서 이어지는 이러한 조력 관계는 불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스토리를 위한 장치들이 필요한 것을 어쩌냐, 게다가 실제로 대부분의 남성이 여성들에 비해 힘이 센 것이 사실이 아니냐, 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심지어 그 얘기들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굳이 그런 장면을 연출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연출할 수 있으며 실제로 다른 장면들은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방식으로 가정되고 반복되는 폭력의 장면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장면과 논리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문제없는 것으로 여기게 합니다.


세계 반대편의 괴물이 튀어나오고 초능력/염력으로 자동차를 집어던지며 많은 사람들이 이래저래 죽어 나가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판타지이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한 번 더 생각한 연출을 보여주기를, 그리고 조금 더 비판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감상하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픽사와 우디가 망쳐온 모든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