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슬기로운 직장 생활
어느덧 나도 연차가 10년을 넘어간다. 이제 막 입사해서 할 소린 아니지만, 이미 회사는 다닌 지 2-3년은 된 것마냥 익숙하고 일은 좀 낯설어도 가슴 설레게 하는 궁금증은 생기지 않는다. 그냥 '하다 보면 하게 되겠지'라고 태평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뿐.
나라고 처음부터 이랬겠는가. 하이에나처럼 '일꾼'에게 기생하려는 무능력자들을 연달아 만나 '나의 처세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뿐 나에게도 일이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저러나 이제는 무슨 일이든 심드렁한 게 사실. 이정도 연차가 쌓이니 어지간한 일은 어찌저찌 다 되더라,는 배짱이 생긴다.
내가 신입일 때 이런 눈빛의 선배들을 본 적이 있다. 직속 상사도 그랬다. 나를 보며 (무언으로) "으이그, 너는 왜 그렇게까지 일을 열심히 하니?" 라는 눈빛을 보내던 사람들. 지금 사회 초년생이 나를 보면 그렇게 말하겠지. 안 그래도 친한 동료가 나에게 '모든 걸 달관한 사람 같아요.'라고 하더라.
난들 달관하고 싶어서 달관했겠냐고. 직장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일에 참 열심이던 나를, 그런 거 다 부질없으니 적당히 자기 생활 잘 하면서 일하라고 말하게 만든 건 니들이란 말이다!
8시에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하는 삶이 어느새 루틴이 되어 버린 지금, 내 눈빛은 이미 힘을 잃었다.
나이를 먹고, 연차가 쌓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무뎌진다'는 것이다. 어떤 자극에든 무뎌지게 된다. 대부분이 해 본 경험이고, 어떤지 아니까 왠만한 것은 감각을 깨우기 어렵다. 누군가 40대가 된 이후부터는 '새로운 길'로만 다닌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무뎌지는 것을 예방하고 계속해서 자신을깨우는 것이다. 사실 인생에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저 '뻔하다'고 치부해 버리기엔 아쉽다.
아직 젊고, 시간은 많고, 제법 여유도 생긴 지금이 오히려 세계관을 확장하기엔 베스트 타이밍이 아닌가!
그럼 무엇으로 나를 설레게 하면 좋을까? 고민할 차례다.
지난주에는 운동을 시작해 보려고 P.T. 무료 체험에 참여했다. 세상에, 신세계다!
정말 오래 고민하다가 간 건데 진작에 와 볼 걸 후회가 될 정도로 재미있었다. 물론 근육은 아우성이었지만. 삶이 무료해질 땐 계속해서 일상에 새바람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뻔하고 지루한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운전하기 까다로운 서울 한복판으로 이직했더니 대중교통으로만 다녀서 일부러 나가지 않으면 운전할 일이 없었다. 나는 이번 회사는 차를 가지고 출퇴근하기로 했다.
과연 좋은 선택이었다. 매일매일 퀘스트를 깨는 것마냥 네비를 따라가다 보니 절로 운전 실력이 느는 기분이다. 지루함이 생길 겨를이 없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데다가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또 뭐가 있을까. 감각을 깨우는 새로운 자극!
갑자기 한심하게 여겼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실은 무척 현명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중에 제일 한심한 건 나였다. 그들이 여가에 진심이었다면 나는 일에 진심이었을 뿐, 우리 모두 균형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라도 지켰지,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일이 전부인 삶이 되지 않도록 이제라도 삶을 풍요롭게 해야겠다.
회사에 앉아있는 내 눈빛도 그때의 그 선배들 눈빛처럼 흐리멍텅해 보이겠지. 속으론 이런 생각으로 설레고 있는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