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인생을 제대로 즐기며 사는 건 덕후들일지도..
서울국제도서전의 막이 열렸습니다. 저는 회사의 허락을 받아 외근 목적으로 도서전을 참석할 수 있었어요.
일로 가는 것이니 출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도 좀처럼 가지 않는 강남으로 출근이라니, 뜻밖의 일탈이 기대되었습니다.
늘 가는 도서전 풍경도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예정된 일정표에 따라 미팅을 하고, 거래처를 만나고, 녹슨 영어로 몇 마디를 나누고 나면 내게 할당된 오늘의 에너지는 다 소진한 것만 같죠.
그러다 문득 오늘은 관람객 모드로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 싶었어요. 미팅 사이에 텀이 생기기도 했고, 남들은 연차 내고도 온다던데 아무것도 못 즐기는 게(?) 억울하기도 했거든요.
직장인 모드에서 관람객 모드로 전환하자마자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건 바로 덕후들의 향연.
그들은 책을 즐기고 문화를 관람하고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나만 빼고, 모두 즐기는 데에 에너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로 충만해진 표정, 잔뜩 기대하는 얼굴, 몇 바퀴를 돌았는지 두 손 가득한 쇼핑백만큼 부푼 사람들을 보니 내 안에 잃어버렸던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무언가에 진심으로 빠져본 적이 있던가요. 저는 덕후 기질이 없는 사람입니다. 조금 좋아하고 흥미로웠다고 해도 금방 심드렁해져요. 뻔해 보이기 시작하면 저의 흥미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열정을 유지해요. 새삼 덕후력의 원천은 호기심이며 열정이며 곧 끈기라는 걸 깨닫습니다. 세상을 깊이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죠. 애정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제 덕후력을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나라고 좋아하는 게 없을 리가 없는데 저렇게 몰입할 수 있는 걸 찾아보고 싶어 졌어요.
오늘은 덕후로부터 삶을 배웁니다. 삶을 생기 넘치게 만드는 건 의외로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