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끄적이지 않겠는가.
천사들의 합창 ost를 오랜만에 들었다.
(멕시코 드라마로 멕시코는 스페인언어를 쓴다.)
국민학교 시절 누군가 나를 시릴로라고 부른적 있다. 얼굴이 까맣다는 것이다.
벌써 30년이 더 지나가 버렸다.
오늘 난 직장에서 살짝 깨졌다.
그 깨짐이 싱클레어의 그 하나의 세상을 깨기위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렷을 때 보다 돈은 더 가졌는데 그다지 더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돈을 더가져서 파이어족을 꿈꾸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노래들을 들으니 다소 행복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학창시절에 배우지 못한 중요한 것은 어쩌면 화폐에 대한 것이다.
진짜 돈, money는 종이가 아니라 금이다. 모든 화폐의 가치는 언젠가는 0으로 수렴한다는데.
돈은 주조된 자유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너희는 하나님과 맘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하늘에 것에 가치를 두라.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는 아니 나는 자못 모순적이다.
자위를 하던 손으로 판결문을 써야 한다.
어느 기자가 한말처럼, 삶은 부끄러운 것이다.
삶은 분명 방패와 창처럼 모순적이다.
유연함과 견고함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
법은 모든지 가능하다고 자꾸 만들어진다.
어쩌면 그 모순감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정도라는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유명한 패러독스이야기. 거북이를 뒤에서 쫓는 토끼. 토끼가 쫓아간 만큼 거북이는 다소라도 이동한다.
그렇기에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모순의 이야기.
이이야기를 깨기 위해선 미분적분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우리의 아니 나의 삶의 모순을 깨기 위해선 어떤 온도와 압력이, 어떤 도구가 필요할까.
삶에는 답이 없다. 삶에는 답이 있는데 찾기 어렵다.
중학교때는 탑은 아니어도 상위권이라 어머니한테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공부의 끈을 놓고 노래를 열심히 들었다. 그노래들을 지금도 가끔 듣는다.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는 할만한 것이리라.
그 공부가 나를 더 단단하게 해서 어느분야든 전문가가 되면 요새는 유튜버를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더 단단해져서 파괴되지않는 나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다면, 나만의 길을 걸어나가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