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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May 12. 2022

다시 산티아고로 - 13일 차

별들의 들판으로

13일 차


아 라셰(A laxe) - 멜리데

오늘 걸은 거리 : 45.4km

걸은 거리 : 328.9km

남은 거리 : 52.7km



어제의 원래 계획은 페레이로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하루 쉬어갈 예정이었으나, 4킬로미터 정도만 더 걸으면 아 라셰라는 지역의 산골짜기에 덩그러니 혼자 자리한 알베르게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나서 끌리듯 그곳으로 가 하룻밤을 보냈다. 아 라셰의 알베르게의 숙박 비용은 공립이나 일반 사립 알베르게보다 조금 비싼 편이기는 했지만, 세심하게 가꾸어진 넓은 정원과 고즈넉한 산장같은 분위기의 2층 짜리 알베르게와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었고, 6인실 도미토리 룸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게다가 깨끗한 담요까지 제공해 주어서, 침낭을 펴고 접는 귀찮음도 덜 수 있었다. 독일에서 온 노부부 순례자와 함께 방을 썼는데, 나는 이 날 40킬로미터를 넘게 걸어온 덕분에 사교(?)에 필요한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고, 다행히 그들도 무척 피곤한 하루를 보냈는지 내가 저녁을 먹고 들어온 7시에 이미 곤히 잠들어있었다. 요즈음 해는 오후 10시가 넘어서 지기 때문에, 나는 정원의 선베드에 비스듬히 누워 글을 쓰고, 드로잉을 했다. 숲 속에 둘러쌓인 알베르게의 방에서는 잠이 드는 순간까지 풀벌레들의 외롭고 나직한 울음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최근의 스페인 날씨는 정오에 가까운 오전부터 벌써 22~24도 이상을 넘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해 낮에는 땀을 너무 많이 흘리게 되어 최대한 시원할 때 많이 걷는 게 낫다 싶기도 했고, 지금까지 걸어온 것보다 조금 속력을 내서 하루빨리 산티아고에 닿고 싶은 마음에 새벽 5시에서 6 사이에는 알베르게를 나서게 됐다.

오전 5시, 아 라셰의 알베르게를 살금살금 나온 나는 불빛 하나 없어 캄캄한 숲길을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 홀로 걷다가 문득 하늘 저편을 바라보았고, 갈 길이 먼 하루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꽤 오래도록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늘 그 자리에 있는데도 늘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셀 수 없는 존재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별자리에 대해 잘 알았더라면, 아마도 동이 틀 때까지도 나는 넋을 잃고 그곳을 떠나지 못했을 터다. 수많은 별빛과 은하수 아래 깊은 숲 속 한가운데에서의 어둠은 오히려 오랫동안 써 온 낡고 친근한 담요처럼 안온하고 포근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는 야곱 성인을 의미하며, '콤포스텔라'는 '별들의 들판'을 뜻한다. 아름다운 이름의 도시다.

이 여행이 별들의 들판을 향해 느리고 확실하게 다가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할 때면, 어쩐지 수많은 꿈들 속에서 방황했던, 설렘과 불안의 농도가 모두 함량 초과였던 유년의 날들이 떠오른다. 밤하늘에 가득 찬 셀 수 없는 별들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아름답고 반짝거려서, 그중에 어느 것 하나 가장 멋진 것이라고 이름 붙여 감히 열외 시킬 수 없던 그런 두근대는 감정과 어쩔 줄 모르는 기분에 대한 기억들. 어쩌면 그들은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 별을 올려다볼 수 없는 우리의 뻣뻣한 목의 각도에 잠시 가려졌을 뿐, 언제까지고 우리의 머리 위에서 깜빡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반짝일 그 멋진 밤의 시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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