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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May 13. 2022

다시 산티아고로 - 14일 차

너를 만나기 위해

14 


멜리데 - 라바코야

오늘 걸은 거리 : 42.7km

걸은 거리 : 371.6km

남은 거리 : 10km




이번 순례 여행  분명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다.  며칠간 계속해서 하루에 4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기 때문인지 피로가 누적된 것 같기도 했고, 가장  문제는 물집이었다. 왼쪽과 오른쪽  양쪽의 새끼발가락에 사이좋게 물집이 잡혔고, 오늘은 왼쪽  뒤꿈치에   물집이 잡혔는데, 걷다 보면 통증은 누그러지긴 했지만, 걷는 도중 잠시 앉아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늘로 물집을 찔러 실을  놓아 진물을 빠지게 하는 일이 무척 귀찮은 데다가 고역이었다. 소독을 하고, 다시 테이핑을 하고 나서 신발을 신고 걷는  순간은 정말 다시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발이 아팠다. 물론  상태를 참고   걷다 보면  익숙해지고를 반복하는 식이다. 9  여기서 400킬로미터를 걸었을 때는 전혀 없었던 일을 이제야 뒤늦게 겪으며 걷다 보니 고통스럽기야 했지만, 어쩐지 이제야 순례길이 주는 온당한 경험  하나를 달성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두 번째 순례길을 떠나오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내게 있어 가장 큰 동인은 9년 전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당시의 나는 부모의 금전적인 도움 없이는 도무지 스스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편의점의 포스기 앞에서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담뱃갑의 바코드를 찍는 일 정도였고, 당최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지는데도 불구하고, 갈 곳을 잃은 열정만 가득해 쉽게 자만심에 빠지는 종류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의 인내와 끈기로 산티아고까지의 여정을 버텨내면 결국 그 누구라도 내게 거기에 대한 칭찬과 인정을 내어줄 수밖에 없기에, 그것이 그때의 빈곤한 내가 이 길을 걷기로 결심한 중요한 동기였을 수 있다. 시작이야 어떻게 됐든, 당시 친구에게 빌린 침낭과 청바지 한 벌과 싸구려 바람막이 재킷, 늘 삶은 계란 여섯 알과 슈퍼에서 산 여덟 개 들이 머핀을 들고 다니면서 400킬로미터를 걸으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순례길에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들의 비율이 훨씬 많았기에 길을 걸으며 그분들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도 빌릴 수 있었다. 9년 전, 그렇게 길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호의를 입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해 대성당 광장에 서던 날, 나는 비어있는 나의 두 손에 스스로 무언가를 쥐는 날 반드시 다시 돌아와 절반을 채우겠다고 내게 약속했다.





산티아고 도착 예정일은 금요일로 잡았는데, 도착하는 시점에 너무 지치지 않은 상태로 여유 있게 도시도 둘러보고, 엽서도 써볼 (우체국은 주말에는 열지 않기에) 최대한 거리를 많이 줄여놓자고 생각했으므로  며칠간 의도치 않게 새벽부터 무리하며 걷고 있다. 때문에, 오늘도 여느 때처럼 모두가 잠든 시간에 조용히 일어나 알베르게와 도시를 빠져나왔다. 멜리데를 벗어나 불빛   없는 숲길을 걷던 , 핸드폰 플래시에 비친 표지석이 눈에 띄었다. 어느새 산티아고까지의 거리는 40킬로미터도  남아있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자꾸만 눈물이 쏟아져서,  새벽의 숲길에서 오래도록 울음을 흘리며 걸었다.

9  그때의 나에게 이제 조금은 당당해졌다고, 아직 여전히 부끄럽지만,  방황과 수많은 반목들 끝에  초라했던  손이 무언가의 쓸모를 찾았다고,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서 오래도록 나를 기다렸던 너를 만나러 돌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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