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시작의 동의어다.
몇 년 전, 직장인 밴드를 하는 친구의 공연에 다녀온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낸 그 친구가 밴드를 시작했다고 이야기했을 때에는 사실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조금 진지한 취미이겠거니 여겼던 것 같다. 어쩌면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해 내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옴과 동시에 취직에 성공한 그는 짧은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생업의 전선에 뛰어들어 일주일 내내 새벽 택시를 달려 귀가하기 일쑤였고, 온전한 주말을 보낸 적이 제대로 없을 정도로 분주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우리는 가끔 학창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동네의 작은 공원에서 밤늦게 만나 캔 맥주를 부딪히며 우리가 잃어온 것과 잃어버릴 것들, 소망하는 것들에 대한 넋두리를 하염없이 쏟아내곤 했다. 우리가 언제나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우리에게 속절없이 닥쳐오는 현실이라는 파도 앞에서 손 쓸 틈도 없이 '보통 사람'이 되어 결국 무력하게 투항하게 될 운명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어쩌면 그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친 바다를 향해 배를 띄울 수 있도록 길을 비추어 주는 등대와 같은 존재이지 않았을까.
그가 단 하루를 위해 일 년 간 준비를 했다는 공연은 합정 근처의, 여느 아마추어 밴드들이 수도 없이 거쳐갔을 작고 아담한 지하 콘서트장에서 열렸다. 그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관객들에게 어색한 멘트를 날리기는 했지만,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고, 진지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공연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은 내게 아마추어리즘을 넘어서 무언가 다른 종류의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 단 하루의 공연에서 막역한 친구 간의 무수한 농담 따먹기에 가려졌던,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볼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는 두 종류의 세상이 등장한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주인공이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현실세계이고, '세계의 끝'은 그가 내면의 무의식으로 창조한 세계다. 소설은 이 두 세상을 교차하며 주인공이 겪는 모험과 갈등을 묘사하는데, 결국 주인공은 '현실'에 남기보다는 '세계의 끝'을 선택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기로 결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공연은 내게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 '끝'은, '시작'의 동의어다.
"너는 자신을 상실한 게 아니야. 다만 기억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을 뿐이지. 그래서 넌 혼란스러운 거야. 그러나 결코 네가 틀린 게 아니야. 가령 기억이 상실되었다 해도,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지. 마음이란 것은 그 자체의 행동 원리를 가지고 있어. 그게 곧 자 기지. 자신의 힘을 믿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넌 외부의 힘에 이끌려 수수께끼 같은 장소로 끌려가게 된다구."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