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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Nov 27. 2022

드래곤라자와 해리포터를 좋아했던 소년



내 십 대 시절 가장 좋아했던 소설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다. 조앤 롤링으로 판타지의 세계에 입문했고, 이영도로 그 방점을 찍었다. 

거짓말 하나한 보태고, 솔직히 해리포터는 최소 네 번 이상 읽고 또 읽었고, 드래곤 라자는 그보다 심하게 읽어 재꼈다. 물론 해리포터 영화도 그렇게 몇 번 씩이나 봤고, 지금도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재관람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처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출간됐을 때 신문 광고가 기억난다. 내용은 대략 이랬던 것 같다. '책이라면 아무리 질색팔색 하는 아이라도 마법에 걸린 것처럼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된다!' 나를 포함한 전 세계의 아이들이 그 신기한 마법에 걸렸고, 어른들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나는 해리포터에 심하게 빠져있었기 때문에, 헤르미온느를 연기한 엠마 왓슨에게 팬레터도 여러 장 보냈었고, (당시 그녀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오타쿠들의 성지로 알려진 코믹월드까지 가서 용돈을 탈탈 털어 굿즈를 사 모으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해리포터의 계보를 이어 내가 빠져든 장르 소설은 <드래곤 라자>였다. 이때부터 어머니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던 것 같다. 사실 당시 어른들의 시선은 대부분 그랬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마법 판타지 소설인 해리포터는 괜찮은데, 국산(?) 무협지나 환상 문학은 학업을 게을리하게 하고, 음침한 망상이나 하는 내성적인 소년으로 이끄는- 악마가 쓴 금서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현실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은 지역 중의 하나였던 동네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내 주눅 들어있었고, 학업에 있어 어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심한 압박감과 무력감에 스스로를 전혀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판타지 소설 속 말도 안 되는 기묘한 이야기와 멋진 모험들은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그 책들을 손에 들고 있는 순간만큼은 상상의 세상 속으로 얼마든지 멀리멀리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유일하게 마음의 고삐를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법 같은 멋지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동경했던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직업과 인생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유년시절의 억압된 마음과 무력했던 그때의 현실이 나를 이 길로 이끄는 가장 큰 동력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작가 생활을 시작했던 그 순간부터 꽤 오랜 기간 동안, 연말이면 일 년을 잘 버텨냈다는 안도감보다는, 다음 해를 어떻게 버텨내어야 할지에 대한 불안감이 앞섰다. 물론 이제는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때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 불안의 크기는 단 일 그램도 줄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마치 빈 캔버스를 앞두고 느끼는 두려움과 비슷하다.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거기서 위로를 받는다.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어서. 결국 그림을 완성하는 희열로 가득 차게 될 순간들을 기대하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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