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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 Nov 25. 2019

구멍난 양말을 버리지 않는 이유

저를 버리지 마세요우,,,




해가 저물어 가는 나른한 일요일 오후, 뭘 할까 두리번거리다가 테이블 위에 던져두었던 양말 한 짝이 눈에 들어왔다. 마른 빨래를 개다가 '아 이거 빵꾸났었지' 하고 빼 놓았던 검은 목양말이다. 서랍에서 자고 있던 휴대용 반짇고리를 꺼내 조그만 바늘에 심혈을 기울여 실을 끼운다. 할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실 끝에 침을 묻혀 두 번 돌려묶으면 준비 완료다.  


중학교 가정시간에 배운대로 박음질을 몇 땀 하면 구멍은 싱겁게 메워진다. 꿰맨 곳이 다시 터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두 세번 더 왔다갔다하면 이제 이 구멍으로는 절대 발가락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한참 남은 실을 잘라 단단히 묶으며 왜 그리 궁상맞게 양말을 꿰매신냐던 친구 말이 떠올랐다.


양말을 꿰매신는 이유는 이 양말이 좋기 때문이다. 새 양말을 살 수도 있지만 이 양말을 신고 지낸 그동안의 겨울이 있으니까. 내게는 겨울용 검은 목양말이 여러 켤레있지만 다 같은 양말은 아니다. 그 미묘한 차이는 내 양말이니까 나만이 안다. 목 부분이 쫀쫀한 양말은 양말이 잘 벗겨지는 운동화를 신을 때 신는다. 옅은 세로 스트라이프 짜임으로 된 양말은 두께가 좀 얇아서 로퍼에 신는다. 이번에 꿰맨 양말은 아무 특징 없는 민양말인데 신다보니 늘어나서 두 짝 중 한 짝이 좀 더 크다. 나는 늘 오른발보다 살짝 큰 내 왼발에 그 쪽을 신는다.


여섯땀 정도 꿰매기만 하면 무난히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양말이다. 늘어난 것도 구멍이 난 것도 나와 양말이 함께한 시간이 쌓여 생긴 일이다. 단 여섯땀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 시간을 새 것으로 대체한다면 너무한 일일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구멍난 양말이거나 구멍난 양말이었던 적이 있다. 새 양말로 태어난이래 몸이고 마음이고 일정 부분 헤지며 살고 있으니까. 잘하다가도 본의 아니게 구멍을 만들어 버렸던 적이 누구나 있으니까. 조금 헤졌다고, 한번 구멍이 났다고 단번에 내쳐졌다면 우리 삶은 생각보다 더 남루했을 것이다.


발가락 쪽에 뚫린 작은 구멍보다 아직 튼튼한 발바닥과 발목 쪽을 봐 주기를. 함께 하며 늘어나버린 시간을 한번 더 생각해 주기를. 여섯땀의 기회 정도는 주어지는 삶이기를. 양말에게든, 우리에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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