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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짱 Feb 21. 2023

"아빠가 걱정돼."

아들의 말말말!

 가끔 아이가 훌쩍 커버렸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있다. 네 발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뒷모습을 볼 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할 때, 자기가 먹은 그릇을 알아서 설거지통에 넣을 때......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이렇게 알아서 잘 클 텐데. 지난 시절 나는 왜 이리 불안했었을까.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부모덕'에 크기도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자라고 성장하며 많은 것을 배운다. 100일이 넘은 둘째가 뒤집기를 하려고 끙끙 대며 발차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첫째 아이가 뒤집고 배밀이하고 기고 서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애썼을지 새삼 대견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그렇게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때에 맞춰 성장해 나간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첫째를 키우며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했던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언제쯤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는 언제 대변을 참지 않고 스스로 화장실을 갈 수 있을까, 우리 아이는 언제쯤 밤에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을까. 언제쯤, 언제쯤, 언제쯤 할 수 있을까. 빨리 시간이 가길, 그래서 아이가 얼른 성장하길 바랐다. 아이에게는 그 아이만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뒤에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그때 그 순간'의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참 아쉬운 시간들이다.


 오늘은 아들과 함께 집 앞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를 포장해 왔다. 곰돌이 모양의 빵 샌드위치란 말에 꼭 먹고 싶다며 며칠 동안 노래를 불렀다. 햄치즈 샌드위치와 햄에그 샌드위치, 그리고 사과주스까지. 아이의 취향대로 완벽하게 차려진 한 상에 아들은 너무나 행복해했다.

 "엄마, 너무 귀여워서 먹기 아까워. 사진 찍어주세요."

 샌드위치를 사진으로 남기고 나서야 아들은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는 말과 함께 엄지 척을 해 보이기까지 했다.

 "엄마, 이은이 깨기 전에 이거 얼른 먹어요."

 아들은 먹기 아까울 정도로 소중한 샌드위치를 내게 내밀었다. 아들은 동생이 생긴 후로 부쩍 나를 챙겼다. 고맙고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생 때문에 너무 빨리 철이 드는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두 입 정도 먹었을까. 자고 있던 둘째가 깼는지 칭얼댔다. 나는 서둘러 둘째가 있는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아기를 안고 토닥이고 있는데, 방 너머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등이 넓었나, 언제 또 이렇게 컸지, 생각하고 있는 중에 아들이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걱정 돼."


"응? 아빠가?"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손에 샌드위치를 든 채,

"나는 아빠가 걱정 돼."

라고 말했다. 갑자기 아빠가 걱정된다니.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아들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아빠는 밥은 제대로 먹었을까?"


아......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으니, 회사에 간 아빠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들의 말에, 나는 이번에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아빠를 생각해 준 기특한 아들의 마음에 감동을 받을 틈도 없이 둘째가 울었고, 기저귀를 갈았고, 목욕을 시켰다. 중간중간 아들이 그려온 그림에 반응해 주고, 아들이 필요한 것들을 찾아주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또 어찌어찌하다 보니 남편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아들은 "아빠"하며 달려갔다. 남편은 아이를 가볍게 안아준 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 아들이 뭔가를 들고 오며 남편에게 내밀었다.

 "아빠, 이거 먹어요. 엄청 맛있어."

 아들이 아빠에게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샌드위치였다. 햄치즈 샌드위치 하나,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은 햄에그 샌드위치 하나. 아빠가 생각났던 아들은 샌드위치를 다시 포장용기에 고스란히 담아놨던 것이다. 둘째를 챙기느라 미처 보지도 못했는데, 언제 이렇게 챙겨놓은 건지.



 누군가는 그 일이 뭐가 그리 특별하냐, 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감동이고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것도 내 아이의 것이 되는 순간 특별해진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내 것을 고마운 이에게 나눠주는 것. 누가 애써, 억지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이가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 한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정말이지 매 순간 감동이다.


 이제는  아들의 시간과 속도에 맞춰 나란히 걸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앞서 끌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렇게 부지런히, 따뜻하게 커나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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