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도 노31
“아, 그런데 그거 알아요? 제가 제주도에 내려와서 지낸 지 13년 차 된 선배로서 얘기하는데, 제주도는 혼자 살기 외로운 곳이에요. 아마 연애를 하던가 해야 될 거예요.”
“난 사실 와이프랑 사이가 좋지 않아요. 안 그래도 지금 각방 쓰고 있는 처지예요. 아들이 둘 있긴 한데, 언젠가 이혼을 해야겠죠.”
“우리 이러지 말고 밥이나 같이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맛있는 거 먹고 커피도 마시고,, 좋잖아요?”
“S 씨는 오피스와이프 하기에 딱 좋은 스타일인데…”
이혼한 후 처음으로 혼자 집을 구하고 계약을 했다. 인터넷 ‘다방’ 플랫폼에서 구한 원룸이었다.
서울에서 지내고 있던 터라 제주도에 오래 머무를 시간이 없어 하루 안에 되도록이면 계약을 해야 했다.
처음 만난 날, 안 해도 될 말을 하면서 집주인은 내게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공항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면서 그는 자신의 지은 건물이 7채나 있고 차도 아우디에, 안 그래도 며칠 전 벤츠 한 대를 더 구입했다며 내가 자신이 부자인 걸 믿지 못하는 거 같다며 자신이 사는 집까지 데려가 보여주었다. 안까지 들어가진 않았지만 그 동네가 서귀포시에 ‘혁신도시’라고 하는 꽤나 비싼 동네임을 어필했다.
어쩌라고……
제주도에서 혼자라는 사실에 되도록이면 집주인과 어떤 마찰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뭐든 좋은 게 좋은 거죠 뭐 그리 딱딱하게 굴어요. 제주도에 아는 오빠 하나 생겼다고 좋게 생각하면 되요라는 말에 나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이상으로 추잡하게 대하는 그의 행동이 껄끄러워졌다. 기댈 곳 없는 사람의 약한 마음을 이용한 그의 의도가 순결하지 않음을 깨닫고 이후 딱 집주인으로만 대했다. 사실 친구로 대한적도 없었다.
일 년이 지나고 월세에서 전세로, 일층에서 이층으로 나는 그와 재계약을 했다.
그리고 만료 14개월 전 난 제주도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집주인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나도 미안한 마음에 세입자를 직접 알아보겠다고 했고 다행히 바로 다음 날 ‘당근마켓’에서 계약하고 싶다는 사람을 찾았다.
그녀가 방을 보러 왔고, 모든 게 나와 얘기가 끝난 후에 난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집주인은 내게 관리비를 올려 받을 예정이었고, 전세금도 올릴 수 있는데 내가 상의 없이 사람을 구했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했다. 그러더니 더는 나와 얘기하기 싫다며 집 관련해서 자기가 고용한 매니저와 앞으로 연락하라며 번호를 남겼다. 잠시 후 매니저와 통화가 됐는데 재계약하는데 드는 수고비용을 30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신규 계약자가 내 앞에 있었고 그 분과 나는 어이가 없어 그 30만 원에 대한 내용이 뭐냐 물었더니, 오가는데 드는 기름값과 시간투자 비용이란다.
신규세입자는 자기가 이에 대해 집주인과 얘기해 보고 싶다는 말에 난 매니저의 연락처를 알려줬고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그녀가 떠났고 몇 시간 후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규세입자일 뻔했던 그녀는 막상 집주인과는 통화는 하지도 않았고 매니저로부터 전해 들은 사실로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화를 버럭내면서 왜 아무한테나 내 연락처를 알려줬냐며 그동안 정을 생각해서 좋게 하려고 했는데, 그 여자가 자기한테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따져가냐며 기분이 나빠 계약은커녕 나더러 만기를 채우고 나가라고 질렀다. 도무지 뭐가 잘못된 건지 나로선 파악이 안 되는데, 계속 흥분조로 감정적으로 질러대는 그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말려드는 게 느껴졌다.
그가 화가 난 포인트는 자신에게 스마트하게 걸고넘어진 그녀(신규계약자일 뻔했던)의 태도였다. 불만을 제기한 것도 아니고 부동산을 껴서 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겠냐고 물은 그녀의 너무도 정상적인 질문을 그는 자기를 공격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그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고 난 결국 새로운 세입자를 그들이 구하는 조건으로 수고비 30만 원을 주기로 하고 2021년 8월 만기를 14개월 남긴 채 그 집을 비웠다. 집의 이상이 없음을 매니저가 확인했고 세입자를 구하는 대로 정산해서 전세금을 반환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1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고 난 외국에 있는 상황이었다. 만료일이 점점 다가오자 난 해외에서 전화연결이 안 돼, 카카오톡으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집주인과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둘 다 확인을 하지 않았고 난 부득이하게 제주도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연락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이틀 뒤 둘은 전화 연결이 되었고 집주인은 다음 날, 집 안 벽 사진을 보내며 이를 처리해야 할 것 같다고, 이것만 해결하면 돈은 문제없이 받을 거라고 했다. 난 그래서 도배비를 청구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료일 3일 전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가능한 시간에 연락 주세요.’
11월 1일, 계약 만료 3일 전에 그와 통화가 됐다.
“아, 지금 외국에 계신다면서요? 한국엔 다시 안 돌아오는 건가요? “
“아뇨 들어갈 건데 아직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어요.”
“아 그래요? 그럼 한국에 들어와서 다시 제주도에서 지낼 생각 있으신가요? “
“아뇨, 없어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근데 혹시 보낸 사진은 확인하셨죠? 집이 오랫동안 비워있어서 벽이 아주 지저분해졌어요. 이거 내가 볼 때 공사가 커질 거고 기간도 꽤 걸릴 것 같은데… 벽 뜯고 석고보드까지 손봐야 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살았으면 이 정도까지는 안 됐을 텐데. 아 내가 돈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빌려봤는데 못 구했어요. 그건 내 잘못인 거 인정하니까, 그리고 서로 사정 봐서 공사는 내가 알아서 하는 대신 돈을 올해 말일까지 주는 건 어때요?”
“그럼 공사금 제하고 전세금 돌려주시면 되잖아요.”
“아 그런데 제가 돈을 준비 못했다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조건으로 하는 게 서로한테 좋을 거 같다니까요. 공사 기간 한 달 정도 걸릴 거 같은데, 안 그래도 위층에 집이 비었어요 다행히. 그래서 집 보러 온다는 사람 있으면 그 집 세주고, 그 받은 돈으로 S 씨한테 돌려줄게요. “
너무도 당당히 말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렇게 또 넘어갈 뻔했다. 이후 노31일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통화 이후 과정에 대해 다음회부터 자세하게 다루겠다.
나와 비슷한 경우를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