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왕자님의 와이프로 행복한 삶을 마감했을까
한 번은 꿈꿔봤다.
내 인생을 바꿀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 우리 삶에서 그런 기회는 아마 결혼이겠지만 내 경우는 아니었다. 그 꿈을 결혼당시까지 꾸고 있었다면,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려 부단히 노력했다면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사실 동화 속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남자에게 자기 인생을 순종적으로 바치는 능력 없는 여자로 보였다. 그런데 그 여자들의 능력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신데렐라는 착한 성심 덕분에 좋은 남자를 만난 게 아니라 기회가 올 때마다 그걸 호기심 있게 받아들이고 행동했다.
스웨덴 여행 이후 그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내게 항상 남아있었고 계속해서 기회를 만드려고 애썼다. 자그마치 7년이란 시간 동안 그 생각을 접지 않았다. 첫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인연으로 난 그다음 해에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해냈고 점점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 끈을 놓지 않으려고 그 친구들과 계속해서 연락하며 지냈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갔을 무렵, 그 친구들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싱글이었던 한 친구는 가족을 이루었고, 리니아와 시몬 커플은 아이 둘을 데리고 아이슬란드로 떠나 대학에 들어갔다. 또한 마티는 전 여자친구랑 살면서 배웠던 첼로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내가 살고자 원했던 그 세계는 나의 애원과 원성에도 꿈쩍하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돌아가는 게 보였다. 어떻게 나만 쏙 빼고.
마침내 나에게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스웨덴에 사는 지인이 내가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나는 이에 응하기만 하고 짐 싸서 갔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나의 그 지인은 현실적으로 이민자로 남의 나라에서 버티는 삶이 얼마나 씁쓸하고 비참한지를 얘기해 주었다. 인생은 버티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나에게 그 말은 별로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내가 그곳에서 ‘할 일’이 내 것이 아니란 걸 느꼈다. 환경이 바뀌는 건 좋지만 그곳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관심도 없는 일을 하며 과연 내가 얼마나 만족스럽게 살 지에 의구심을 품은 것이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그 기회는 물 건너갔다. 그리고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온라인으로 만난 대화 상대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잘 통했고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스쳐 지나갈 연으로 생각했다.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쩐지 용기를 내서 그를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바람보다는 고단하고 외로웠던 그 시기에 스스로에게 선물로 기회를 주고 싶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시간을 ‘달콤했던 휴가’로 여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메신저에 그로부터 사진이 몇 장 왔다. 한국행 비행기 표였다.
그 사람은 기회를 만들었고 나는 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백마 탄 왕자님도 아니고 나도 신데렐라가 아니지만 우리 둘 다 호기심만큼은 그 둘에 못지않았다. 이후 나는 그 사람이 사는 나라, 오스트리아에 가게 되었고 이웃나라인 독일에 사는 입양 보내졌던 나의 친동생을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에 성숙하지 못함의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도전하는 것, 열정적인 것, 꿈에 전진하는 것이 어느새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그걸 이루지 못하거나 만족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도 점점 커진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막무가내 정신도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호기심만은 여전히 두려 한다. 간절하기보다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하고 있다. 나에게 오는 것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고 무심히 돌아서는 것에게 크게 동요하지 않으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