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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스 플레이스 Nov 11. 2022

미니멀리즘의 야망, 슈퍼 노멀

미니멀리즘 시리즈 2


Less is more_ Mies van der Rohe

Less but better_ Dieter Rams




유행은 당시 시대의 결핍에 대한 반응이라고도 볼 수 있다.

거센 유행이 되기 위해서는 시대적 가치관이 요구하는 패러다임과 얼마나 잘 융합되었는가에 달려있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우리가 미니멀하다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일상품, 공산품이라 불러 마땅하다.

하지만 물질성에 충실한 디자인 오브제,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인이라는 묘한 역학관계 속에 예술적 힘을 부여받았다.





미니멀은 꾸미기일까 버리기일까


가리고 숨기는 것이 이렇게나 찬사를 받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미니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유행하고 있는 미니멀은 단순히 형태만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삶의 형태로도 각광받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들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서점에 가보면 인테리어 코너에 언젠가부터 스타일, 꾸미는 방법보다 수납 비법, 잘 버리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 대거 진열되어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이들은 물질적인 삶을 가볍고 단순한 게 만들어 본질에 집중하고 현재를 인지하며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부터의 삶을 바꾸어 개인뿐 아니라 지구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한다.


인테리어 스타일, 인테리어하는 법에서 정리, 수납하는 법으로 대체된 서점의 인테리어 코너 책들.




과거에서 본 미래의 디자인_미니멀


1960년대에 만들어진 미래 공상과학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스타워즈>, <스타트렉> 시리즈들부터 90년대,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제작된 <가타카>, <오블리비언>, <엑스 마키나>등의 많은 SF영화에서 채택한 의상이나 공간 인테리어를 보면 미니멀리즘, 혹은 젠과 닿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영화는 색감이 밝은데도 한참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용과 상관없이도 뭔가 살짝 우울해지기도 하고 깨끗하고 세련된 멀미를 느끼게도 된다. 때문에 오히려 밖의  자연 풍경들, 하늘, 레이저 광선의 컬러가 굉장히 자극적으로 보인다.


이렇게 자연미나 장식이 전무한 미니멀한 공간 디자인은 세련되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동시에 공기가 통하지 않는, 살아있지 않은, 멈춰버린 진공상태의 적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감독은 그러한 점을 영화 속 도구로써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과거부터 상상해온 미래의 공간은 미니멀이었다.


영화 <가타카>의 장면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오블리비언의 장면


미니멀의 시작


유명한 예술가, 사상가, 건축가 모두 시대와의 상호작용 속에 태어난다.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디터 람스는 특수한 시대적 제약이 만들어낸 디자이너다. 독일인으로 2차 세계대전 후 전후 복구라는 명제가 있었던 어려운 시대에 20대를 맞이했고, 두 번에 걸친 세계전쟁이 낳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술과 전후 복구라는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대량 생산을 하는 회사에 소속된 산업디자이너였다는 점이 그를 미니멀 디자인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두 차례의 전쟁 이후 기술의 발전, 소재의 발견, 대량 생산, 소비계층의 변화로 단순한 형태의 미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 안에서 시대적 제약이 만나 현대적 아름다움이 만들어졌다. 그는 제품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사용자의 편의성을 우선한 최소한의 디자인이라는 규칙으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을 만들었다. 이후 미니멀리즘은 화려한 색감과 장식의 유행으로 잠시 사그라들었다가 이에 대한 염증으로 다시 미니멀리즘과 젠 스타일이 각광을 받았다. 이때 유행하게 된 미니멀리즘의 변화라면 동양적 미, 일본의 젠 문화가 대거 합류했다는 점이다. 전후 일본의 경제 성장이 세계 디자인에 미친 영향이다. 

그리고 미니멀리즘이 다시 돌아왔다.


디터 람스의 작품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동양의 미니멀, 젠 스타일


일반적으로 미니멀 인테리어에서는 사용되는 동양의 디자인 요소는 일본의 젠 스타일이다. 우리와 비슷한 목조주택이 대부분인 일본의 전통 인테리어를 보면 우리나라와 다르게 모두 시원하게 뻗은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런 장식이 없이 기하학적인 선으로 공간의 미를 표현한 젠 스타일은 선(禪) 사상을 공간적 구성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사상 아래 만들어진 젠 스타일은 사무라이 칼로 벤 듯 날렵하게 직선으로 잘린 나무, 긴 복도를 따라 정렬된 격자구조, 간살이 들어간 미닫이문으로 분리된 공간, 원형 창, 모래로 상징화된 정원 등 극단적으로 장식 요소를 배제하고 의미만 남긴 디자인 형태를 볼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일본의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건축가가 안도 타다오의 작품에도 젠이 담겨있고 무인양품의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의 철학에도 젠이 바탕이 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의 철학은 모두 모던 미니멀의 대표이자 창시자인 디터 람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와 연결되어 있다. 서로가 닮은꼴인 것을 알아본 것이다.


젠 스타일 공간.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좌)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우)르 코르뷔지에 빌라사보아




지구 마켓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끝낸 인류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 산업 발전과 국가 간 교류로 인해 많은 생산품이 생겨났고 그것을 소비해야 하는 인구가 늘어났다. 많아진 인구만큼 다양해지고 성장하는 개개인의 요구가 카테고리화 되어 더 크고 다양하게 발전해나가는 순환을 하던 중 이 모두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거대한 실시간 마트에 살게 되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 마트나 어떤 매장에 가도 비슷하지만 다른 수많은 제품들을 마주하게 된다. 다양한 플랫폼의 발전으로 기업이 아니어도 개인이 상품을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생겨나면서 폭발적인 물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에서 일어나고 있고 점점 커지고 있는 상품의 홍수는 지구 전체에 일어나 쇼핑의 나이를 낮추는 등 많은 상상밖의 범위를 가지게 되었다. 상식대로라면 많은 물건과 다양성이 존재하니 ‘획일적 유행’은 거의 힘을 갖지 못할 것 같지만 현실은 ‘더 큰 힘을 가진 유행’으로써 산업화를 이끌고 있다.


코로나 조금 전인 2010년대를 들여다보자. 해외여행의 열풍과 SNS 플랫폼의 거대화로 말 그대로 지구촌이 되었으며 개인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다양하고 유니크한 제품들이 쏟아졌고 이를 쉽게 마케팅하고 판매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성행해 가히 쇼핑의 폭풍 속에 들어있는 듯했다. 덕분에 너무도 정보가 많아 이를 큐레이션 해주는 서비스가 필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미세먼지를 포함한 이상기후가 등장했다. 먼 미래 얘기일 것 같았던 물과 공기의 소중함, 먹거리의 안전 등이 피부에 와닿았을 즈음 코로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코로나를 지나오면서 전 세계는 침체에 빠져들었고 단시간에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게 되었다.


뺴곡한 진열대를 갖춘 대형매트.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지금의 미니멀은 너무도 풍요로워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건들 속에 치였기 때문에 나타난 반작용이기도 하다. 그동안 꽤 물질적으로 풍족했다는 뜻이다. 쉽게 싸고 좋은 물건을 반복적으로 사고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한 번 쓰고 상자로 돌아가 집마다 쌓여가는 물건을 타깃으로 한 당근 마켓이 성공한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가난하거나 적어도 풍족하지 않았다면 이런 현상은 유행할 수가 없다. ‘풀 소유’에 가까운 생활을 해온 것이다.



이제, 여백


여백의 미를 살린 공간.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반면 미니멀은 필요한 것만 남기고 되도록 ‘덜소유’하는 삶이다.

그렇다면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집기들의 개수를 줄이는 것일까? 장식만 없으면 될까? 

멀쩡히 사용할 수 있는 장식적인 디자인, 유행이 지난 디자인의 물건들을 모두 버리고 공간과 가구, 미니멀 디자인 제품으로 새로 사면 될까?


이건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다. 미니멀 디자인 ‘유행에 편승’ 한 것이다. 북유럽 스타일의 유행, 한국적 스타일의 유행, 미니멀 스타일의 유행. 그저 유행의 챗바퀴에 올라타 있는 것이다. 이 유행이 지나가거나 싫증이 나거나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냈거나, 개인의 경제적 여건이 좋아지면 물건은 다시 늘어나고 더 새로운 물건을 필요로 할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생각을 멈추라고 말한다. 무의식 안에서 바로 행동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직관, 무의식 , 깨달음, 본질. 이것의 형태 화가 미니멀리즘이다.

그리고 그 형태는 두 가지 조건을 품는다. 본질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울 것, 그리고 굉장히 기능적일 것.


여백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미니멀리즘 유행의 이유 중 하나다. 너무 많은 제품들과 수많은 정보의 속박을 벗어내기 위한 공간적 몸부림이 여백, 비움, 단순, 본질이라는 명제를 안고 미니멀로 안착한 것이다.





미래의 슈퍼 노멀? 이미 슈퍼 노멀.


공간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미니멀이 대세인 요즘, 우리의 미니멀은 말 그대로 ‘슈퍼노멀’이 된 것 같다.

외부적인 요인, 사회,  경제적인 상황 등에 의해  반강제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가는 기분도 든다. 누구나 내 공간을 소유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로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있지만 지금의 흐름은 공간을 공유하고 버리고 정리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다. 

시대의 흐름 속 유행의 시간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유행의 규칙에 따르면 미니멀 다음은 서서히 맥시멀로 가야 하는데 그 스케일이 이전처럼 커질 수 있을까 싶다. 맥시멀리스트들의 반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꽤나 당분간, 미니멀을 태운 유행의 쳇바퀴는 돌지 않을 듯하다. 경기 침체, 불안한 국제 정세, 기후변화, 4차 산업의 발전, 전염병 같은 이슈로 맥시멀이 대세가 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미니멀리즘의 유행이 단순히 예쁜 아이템에서 그치지 않고 마음과 관계, 생활에서도 본질을 중요시하고 진심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에 대한 차분한 환기를 할 수 있는 증폭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서는 '한국적 인테리어'로 유행하고 있는 [조선 인테리어의 유행]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읽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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