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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스 플레이스 Dec 19. 2022

아이콘이 된 '문(門)'의 메커니즘 2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 깨기 시리즈 여섯 번째_도어 인테리어

필수 도어, 중문



중문.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현관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가 주로 중소형 평수의 한국 아파트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평면이다. 예전에는 소형 평수는 크게 디자인이 들어간 인테리어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소형 평수에도 고급 자재와 구조적 디자인 미를 살려 배치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필수 요소가 중문인 것이다.

외부의 소음과 외기를 한 번 걸러주는 역할도 하지만 내부가 바로 들여다보이는 것도 한 번 걸러준다. 대형 평수에만 있던 중문이 열 평대까지 필수요소가 된 건 어쩌면 개인화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1인 가구 수가 늘어나는 비중에 비례해 개인의 가치와 개성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개인의 공간도 가치있고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공유'가 대세인 지금, '개인'이 강조되는 건 재미있는 현상이다.



대부분의 중문은 유리문이다. 3연동 도어가 인기를 끌다가 곡선 디자인이 가미된 철제 여닫이 중문이 인기를 끌었다. 그 뒤를 이어 간살 중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중문이 대중화가 되다 보니 가격도 몇십 만원대부터 몇 백 만원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자인과 자재로 선택의 폭이 넓어져 고르는 재미가 생겼다.

근데 중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외풍과 소음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문은 이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조선시대 궁으로 가보자.


조선시대 궁의 문.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왕을 만나기 위해서 대궐 입구에서부터 몇 개의 문을 거쳐야 할까. 모르긴 해도 10개는 족히 거쳐야 할 것이다.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슈룹>에는 왕이나 중전의 방이 자주 등장하는데 방문한 자가 처소의 문 앞에 서면 자동문처럼 계속 열리는 미닫이문을 서너개 통과해 만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많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일단 노력이 드는 행위다. 시간도 걸린다. 그렇게 에너지를 써가며 그 사람의 의도대로 만들어 놓은 절차를 모두 통과해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즉 문은 절차다. 이런 예는 지금도 많다. 대기업 회장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반 부서와는 다르게 긴 통로와 비서실을 통과해야 한다. 고급 피부과나 성형외과의 원장실을 들어갈 때도 안내에 따라 복도를 이리저리 돈 후에 원장실로 들어갈 수 있다. 즉, 나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하나의 문을 더 열게 만듦으로써 나의 위치를 올리는 것이다. 10개가 넘는 문을 통과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달른 여러 개의 문의 통과하며 편안하고 자유스럽기보다는 위축되고 긴장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문을 여러 개 만들어 놓은 이유다.


다시 중문으로 돌아오자. 우리나라 대부분 주거건물의 현관 공간의 크기는 1200*1200mm가 기준이다. 그 작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현관문 앞에 중문을 두는 것이다. 애초에 현관문을 열자마자 모든 집안이 들여다보이는 구조의 평면이 문제이지만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여기게 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훤히 거실이 보이는 게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문이 인기를 끌면서 일부 재미있는 사례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뭔가 차단을 하기 위한 용도였던 중문이 내부 공간을 가리기보다는 보여주는데 기여하게 되었다. 문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좌우에 기둥이나 벽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쪽 벽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 가벽을 세우는데 맑은 유리벽을 설치한다. 프레임으로 디자인을 한 경우도 있고 곡유리를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모두 안이 잘 보이는 형태다. 이런 경우 중문도 투명 유리를 사용한다. 다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 꾸미고 산다는 것을 유리벽을 통해 볼 수 있도록 '전시'하는 것이다. 이는 디자인적으로 멋지기도 하고 공간에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는 방식이 된다. 집에 유리벽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될까. 다 보여도 자신 있을 만큼 예쁜 집이어야만 한다. 이 묘한 심리의 공간적 표현인 것이다.

간살 디자인이 중문으로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보여주지만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타인과 구별된 것을 가지고 싶은 욕구가 세련되게 표현된 것이다. 그 좁은 현관을 조금이라도 덜 답답하게 보이면서도 모두의 염원인 '넓어 보일 수 있도록 다양한 디자인이 시도된 유리 중문은 개방적인 이미지의 권위적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중문의 메커니즘이다.




大.門


한 아파트의 현관문은 모두 똑같다. 그리고 규제상 현관문은 개인적으로 교체할 수 없다. 하지만 주택은 다르다. 원하는 크기, 디자인 모두 가능하다.


솟을대문.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조선시대 양반집 담장 앞에 서보자. 기와집 한 채를 반으로 뚝 자르고 우뚝 솟은 것 같은 기와문이 있다. '솟을대문'이다. 양쪽 행랑채 지붕의 높이보다 높은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솟을대문은 고위 관료가 타고 다니던 초헌(외발 바퀴 가마)이 드나들어야 했기에 지붕이 높아진 것이다. 조선시대에 차고가 있는 집이었던 셈이다. 조선 말기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재력을 갖춘 중인들도 권위의 상징인 솟을대문을 설치하게 되었지만 그전까지는 문만 봐도 어떤 위치의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지 알 수 있는 권위를 말해주는 표식이 되었다.


요즘 주택의 대문도 다르지 않다. 신축의 경우 대부분 커다란 사이즈의 문의 선호한다.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드러내고자 하는 권위에 대한 건축적 표현방식인 것이다.


대형 대문.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문의 다양한 표정

반려동물을 위한 귀여운 펫도어.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빠르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들이 많아졌다. 애완에서 반려가 되면서 함께 사는 가족으로써 대우해주기 위해 반려동물의 습성과 사이즈를 고려한 예쁜 문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물론 여기로만 다니지는 않는다.


다양한 아이디어의 도어.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또 아직 어린아이들은 까치발을 해도 문고리를 잡고 열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아이용 도어를 이중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문에 또 다른 기능을 부여해 활용도를 높여주는 것으로 한때 유행했던 책장 도어가 있다. 단순하게 책장의 기능을 넣은 문도 있지만 책꽂이 문을 열면 비밀의 공간이 나타나기도 한다. 문이 꼭 사각형일 이유는 없으니 원형으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아치 도어도 그중 하나라도 하겠다.


간살 다음으로 핫한 도어가 바로 접합유리도어다. 외국에서는 이미 유행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최근에 소개되었다. 접합유리 자체는 오래된 아이템이지만 동양적 느낌이 드는 원단의 텍스처를 유리에 접합해 슬림 프레임 안에 넣어 중문으로 사용한다. 은은한 실크 스카프 같은 인상을 주는 우아하면서도 중후한 패브릭 접합 도어는 공간 분리, 서재, 드레스룸, 회의실 등에 적용된다.


접합유리도어와 원형도어.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이미 문은 단순히 열고 닫는 장치를 넘어 상징이기도 했고 권력이기도, 철학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브제가 되었고 배려가 되었고 아이콘이 되었다. 그렇게, 문은 진화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추위만큼이나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로 평수를 넓혀 이사하기 어려워진 지금, 매매 없이 새집으로 이사하기 프로젝트[ 오래됐지만 괜찮아 ]. 인테리어 솔루션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읽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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