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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스 플레이스 Jan 09. 2023

오래됐지만, 괜찮아!
_구축의 재발견

매매 없이 새 집 살기 시리즈 두 번째 _  공간의 이름표를 떼자


야생에서 살 수 없는 인간의 약점을 채우고 발전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물리적 형태가 바로 건물이라는 공간이다. 물리적 제약을 이기고 만들어진 건물은 부수기 전까진 그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공간을 고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다. 사용자의 특성, 공간의 목적에 따른 공간 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다. 



다양해진 집의 기능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코로나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집'의 급격한 물리적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만큼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고 용도도 다양해졌다. 이제 집은 씻고 자기 위한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헬스장이고 오피스이고 학교이고 극장이다. 코로나를 지나오면서 집의 역할은 이렇게 몇 배로 늘어났다. 

이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공간의 사이즈를 넓히는 것일 거다. 갑자기 늘어난 집의 역할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사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은데 시절이 불안하다. 시절이 편안할 때는 집을 옮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는 개인의 상황을 넘어선 시대적 경기 침체라는 상황 앞에 놓여있다. 이사가 어렵다면 이렇게나 많아진 집의 기능을 어떻게 다 소화시켜야 할지 막막하다. 재택근무, 새로 생긴 취미, 쌓여가는 물건들, 커가는 아이들 등 많은 이유로 공간은 그대로지만 자꾸 좁아진다. 만일 물리적 사이즈를 그대로 두고도 획기적으로 넓어질 수 있다면, '이 공간에 이게 되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런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이름표를 떼 줘

일반적인 30평대 아파트 평면도. 사진출처 네이버 부동산


일반적인 30평대 평면도에서 문이 달린 가장 큰 방은 부부 침실이다. 그리고 주방과 붙어있는 방은 대개 자녀방이거나 옷방이다. 현관 앞에 붙어있는 방도 자녀방이거나 옷방으로 사용한다.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채광이 가장 좋은 곳은 거실이고 채광이 거의 없으면서 좁고 긴 형태는 주방이다. 현관에서 문을 열면 집안이 거의 들여다 보이고 가끔 거실 욕실이 툭 삐져나와 동선이 불편한 경우도 있다. 대개의 안방 욕실은 좁디좁다. 이렇게 안방, 작은방, 베란다, 거실 등 아파트를 지을 당시 구획이 정확히 나누어진 평면도 위에 쓰여있는 명칭대로 들어가서 우리는 생활한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몇십 년 전 써 놓은 그 이름표에 맞춰 들어가 살기에 세상은, 너무도 변했다. 


예를 들어보자.

일요일 아침 7시. 35평에 거주하는 부부의 집이다. 남편은 좀 더 자고 싶은데 아내는 외출하기 위해 침대 옆 옷장에서 옷을 꺼내고 발 밑 화장대에서 뽀스락거린다. 물건을 꺼내고 드라이를 하는 아내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렇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 여기에서 문제점은 일찍 준비하고 있는 아내도, 더 자고 싶은 남편도 아니다. 침실과 드레스룸 파우더룸이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문제다. 큰 방에 침대 하나 두기 뭐 하니 옷장도 두고 화장대도 둔다. 이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다면 옷방을 따로 두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필자가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던 2009년 이런 문제와 마주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붙박이장을 11자로 배치해 옷장이 침실과의 파티션이 되도록 하고 출입구를 만들어 문을 달았다. '룸인룸'이라는 개념을 시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30평대 아파트에서는 없는 사례였다. 큰방을 중간에 파티션 해서 공간을 나눈다는 것은 물론 클라이언트의 용기와 호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도였다. 지금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침실 안에 드레스룸 가벽을 세우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중요한 것은 가지고 있는 공간 안에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보기 좋게 공간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일례일 뿐이다. 경우의 수는 너무 많다. 따라서 각각의 상황에 맞게 공간을 재배치해야 한다. 그러려면 물건에 대한 미련도,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내력벽만 남겨두고 새롭게 공간을 구획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아이디어와 그것을 시도할 수 있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렇게 내 공간의 이름은 내가 정해야 한다. 


도화지 같은 빈 공간.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공간의 허용


그런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름표를 떼는 작업들을 이미 해오고 있었다. 드레스룸, 파우더룸, 요가룸 등 기존에는 없었던 개념이 보편화되면서 방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공간의 크기를 대입하면 다시 이름표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큰 방은 꼭 부부침실이어야만 해, 거실은 꼭 소파와 TV가 있는 거실 용도로 써야만 해, 싱크대가 있는 데가 주방이지.라고 말이다.


거실에 소파와 TV를 11자로 배치하고..는 옛날 얘기 아닐까. 내가 원하는 시간에 다운로드해서 원하는 콘텐츠를  보는 것이 꼭 소파이지 않은 시대다. 아직도 소파와 TV를 11자로 배치하고 누워서 TV를 가끔 보기 위해 거실 사이즈의 공간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다. 누워서 TV를 꼭 보아야 한다면 침실 발 밑으로 TV를 가져가는 게 낫다. 그래도 가끔 앉아서 TV를 보아야 한다면 해가 잘 들지 않는 북서향의 주방자리가 더 낫다. 


우리 집은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요리도 좋아하고 지인들을 가끔씩 초대하는 것을 즐긴다면 굳이 좁은 주방에 주방을 가두어둘 필요가 없다. 이번 기회에 정말 변신을 하는 것이다. 확장을 해서 채광 좋은 전면 창호를 가진 넓은 거실 자리에 대면형 주방과 8인용 테이블을 둔 다이닝룸을 가진다면 삶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냉장, 냉동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주방은 북쪽에 있을 이유가 없다. 이러한 평면은 한옥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제 바뀌어도 어지간히 바뀌어야 할 때다. 가족들이 모두 소파에 둘러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1년에 몇 시간쯤이나 될까? 구성원의 들고 남은 있어도 식탁에 앉아 대화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어떤 공간을 어떤 용도로 허용하는지는 선택에 달렸다. 어떤 것을 허용하느냐에 따라 공간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리모델링을 위한 스타트 킷

0.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를 결정한다.

1. 비내력벽만 남겨두고 모두 비운다. 공간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2. 기본적으로 필요한 항목을 나열하고 하루, 일주일, 한 달 동안 사용 빈도를 계산한다. 

    역할을 합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리한다.

3. 나, 우리 가족의 생활의 구심점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4. 목적이 부여된 공간마다 주요 기능을 정한다. 

5. 정해졌다면 주요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디자인, 배치를 찾는다. 

6. 확장과 분할을 통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고 데드 스페이스를 없애 동선을 효율적으로 배치한다.






다양성을 잃은 종은 멸종한다. 다양성의 감소는 선택권의 감소로 이어진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민족 특성상 통일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우리는 식사자리에서 메뉴를 통일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통일은 통제가 쉽도록 하기 위한 전제가 있기 때문에 획일화이고 단일화되어야 하니 전체적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선택권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획일화되고 정형화되어 있는 평면도의 대단지 아파트의 구조는 한국적인 특성이다. 그렇지만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서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아파트가 진화를 하고 있다는 뜻이고 따라서 한국에서 아파트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100년 뒤 한국적인 대표적인 전통은 '대단지 고층 아파트'로 대변될 것이다. 비슷비슷한 평면도의 아파트라는 단일종 안에서 진화를 거듭해 다양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들은 수요층들의 다양한 선택권에 대한 욕구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에 분명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그렇게 한국의 아파트들이 다양성을 갖춰나가길 바란다.


다음 편에서는 매매 없이 새집살기 솔루션 세 번째[ 오래됐지만 괜찮아 ]에서는 각 공간별 솔루션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읽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by J's 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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