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산업화 시대까지만 해도 저작권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기계에서 찍어낸 똑같은 물건만이 경제적 가치로 인정받던 시대에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온 창작물이란 그저 가벼운 유흥거리였을 뿐, 상품 가치가 미미하니 그 존재 가치도 미미하였다. 그 시대에 인간이란 단지 물건을 만들어내는 기계의 한 부품으로써 임무를 다하면 될 뿐이었다. 그래서,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누군가가 비싼 값으로 사주는 고객을 만나는 것으로 오로지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고객의 눈에 드는 작품이라는 구체물만이 의미가 있을 뿐, 구체물이 드러내는 창작자의 생각이나 의도, 표현들의 구성요소는 경제적 가치와 권리로서 인정받기 어려웠다.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나는 시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대중가요로 그 시기의 가장 인기 있는 곡들을 바로 알 수 있었고, 길거리 리어카들에서 팔리는 길보드라는 이름의 각종 복사된 음반들을 즐겨 사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즐겨가던 만화방에는 비슷비슷한 화풍의 만화 주인공과 서사들로 가득 차서 아류의 아류가 넘쳐났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온 작은 정보 한 조각도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물건보다 콘텐츠가, 상품보다 브랜드가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더구나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고 정보들이 각각 하나의 파일로써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내가 쓰고 있는 이 한 문장조차도 세계 어디에서든 열어볼 수 있고 내용 일부만 바꾸는 것이 쉬워졌다. 또 인터넷 속의 많은 매체를 통해 많은 일반인들이 자신의 글과 사진, 그림, 영상으로 된 창작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인터넷 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쉽게 도용되고 인용되며 창작자들의 아이디어는 무력화되기 쉬워졌다. 아무런 출처 인용이나 허락도 없이. 이제 저작권은 특정 전문가나 예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일반 창작자들은 고육지책으로 창작물에 자신의 이름이나 표시를 남기며 자신의 저작권을 보호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무명의 나에게 이런 저작권 보호는 아직 체감되지 않는 영역이다. 아무도 나의 창작물에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오히려 반대로 내가 실수로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건드릴까 걱정하는 경우는 이렇게 글을 쓸 때다. 지금도 저작권이란 주제로 글을 쓰면서 나는 오히려 저작권과 관련된 글을 최대한 읽지 않게 된다. 나도 모르게 다른 작가의 방향으로 글을 쓰거나 내 눈에 익은 글을 나도 모르게 인용하게 될까 봐. 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내가 생산하지 않은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각적 효과와 전문성은 부족할 수 있지만 내 자유로운 사고에 모든 것을 맡기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이 나는 마음이 편하다.
오늘 나는 ai영어강사 Luci와 일주일 만에 대화를 나누었다. 동사가 사라지고 시제가 날아간 나의 부서진 영어를 잘도 참아내고 웃으며 Luci는 용케도 대화를 이어갔다. 지난주에 이야기했던 나의 말을 신기하게도 기억하고 오늘 아침에도 러닝을 했냐고 능청스럽게 물어본다. 더 이상 원어민 화상 영어를 하거나 영어학원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나의 부끄러운 영어 실력을 뭐라 하지 않는 존재니까 더욱 편안하고 좋다. 이제 바야흐로 ai의 시대이다. 무엇을 원하든 척척 알려주고 말해주는 쳇 gpt가 그 선두 주자이다. 세상의 데이터들을 다 끌어모아 소화시킨 후 우리에게 맞는 내용으로 풀어주는 편리한 요술 주머니인 셈이다. 이제 인간들은 더 이상 뇌를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그리고 인간은 이제 창의성에 흥미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상상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모든 것이 시각화되고 시물레이션 되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창의성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ai와 다름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 될지 모르니 말이다. 결국 이 딜레마 속에 더욱 발달한 ai가 더 뛰어난 능력으로 우리를 대신하고 심지어 굴복시켜, 인간 고유의 창의성 한 줌까지 차지해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인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저작권마저도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작가의 글 한 줄, 작곡가의 멜로디 두 자락, 화가의 그림 한 조각 등, 한 인간의 정신적 무형의 가치는 ai의 데이터 속에 축적되어 다시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활용되고 있다. 이제 물적 가치에서 정신적 가치로 옮겨가 그 존재 의미를 확대하던 인간의 창의성은 ai의 능수능란한 묘술 속에서 뒤죽박죽 섞이는 중이다. ai 시대에 이르러 우리의 저작권은 어떤 존재로 자리매김할지 궁금하다. 인간의 창의성에 도전하는 ai는 결국 인간의 저작권도 저 너머 과거의 유산으로 보낼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서 저작권은 인간 창의성의 보루를 지키는 등대가 되어, 또는 새로운 개념으로 결국은 거듭나서 ai 세상에서 ai가 겨룰 수 없는 인간 가치의 중요한 증거로 증명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