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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혜숙 Feb 17. 2020

영화 <기생충> 달시 파켓처럼 번역하기

외화번역가 머릿속에도 "계획이 다 있었구나"

2020년 2월 9일(현지 시간)에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수상하며 4관왕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를 다시 쓰며,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더불어, 번역 자막도 주목을 받았다.      


<기생충>을 번역한 이는 미국인인 달시 파켓이다. 1997년에 처음 한국에 온 그는 대학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며 한국 영화 매력에 빠져 웹사이트에 꾸준히 한국 영화평을 올렸다. 그러다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20여 년간 150편에 이르는 한국 영화를 번역했다. 대략적인 이력만 봐도, 한국 영화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깊으리라는 게 짐작된다. <기생충>의 성공에 숨은 공신으로 연일 언론 기사에 오르내리며 그가 번역한 자막이 극찬받았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관객들이 모를 만한 한국 단어 및 표현을 다르게 바꾸거나 새롭게 창작한 게 외국 관객에게 주효하게 통했다는 것이다.     


‘짜파구리’를 ‘람동(ramdong)’으로 번역한 자막이 대표적인 예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서 끓인 라면을 외국 관객들이 모를 테니, 그보다 더 많이 알려진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이란 표현을 생각해 낸 거다. 이 외에도 ‘서울대’를 ‘옥스포드(Oxford)’로 번역하고, ‘카카오톡’을 북미에서 많이 사용되는 ‘왓츠앱’으로 바꿔 번역한 것도 재치가 넘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 역시 같은 번역가로서 수긍이 가는 번역이고, 항상 작품 뒤에 숨어야 하는 번역가가 ‘결정적 공신’으로 호명되며 전면에 나섰다는 게 반갑다. 봉준호 감독은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 언론은 1인치 자막이 무너진 것이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 석권에 큰 기여를 했다고 찬사를 보낸다.     


이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막을 번역하는 외화번역가들 머릿속에는 어떤 계획이 있을까?  외국 영화를 한글 자막으로 번역하는 외화번역가들 머릿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달시 파켓이 번역한 상황을 다른 맥락에 놓고 생각해 보면, 번역 기법이 달라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 계획을 변경해야 하는 셈이다.     


‘옥스퍼드대’를 ‘서울대’로 번역한다면 어떨까? 혹은 ‘왓츠앱’을 ‘카카오톡’으로 번역한다면? 한국 관객들이 더 쉽게 번역한 자막이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까? 아마도 관객의 지적 수준을 무시하고 번역가가 멋대로 창작해 원작을 훼손했다는 혹평을 받을지도 모른다.     


외화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옥스퍼드대’와 ‘왓츠앱’을 그대로 옮겨야 좋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조금만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는 정보들은 관객이 직접 알아보게 할 자유와 권한을 줘야 한다. 번역가가 너무 앞서나가서, ‘관객들은 이런 것도 모를 거야.’라고 판단해 너무 쉽게 바꾸거나 창작을 하는 건 위험하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고 싶다면 ‘명문대’와 ‘메신저’ 정도로 일반화해서 번역하면 된다.     


그렇다면 달시 파켓은 왜 원작의 표현을 과감하게 바꿨을까? 미국인이 서울대를 모를 가능성이 높기도 했지만 봉준호 감독 및 제작진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서울대를 ‘Seoul national university’로 옮겼지만 감독과 제작진의 의견을 받아들여 ‘옥스퍼드’로 바꿨다고 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과 직접 소통하며 번역할 수 있다는 건, 번역가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자, 최고의 혜택이다.     


한국의 외화번역가라면 감독과 상의하며 번역할 수 없지만, 방송국 및 영화사 관계자와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예전에 미드 <뉴걸>을 감수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극중에  “스칼렛 오하라처럼 옷을 입었어.”라는 대사가 나왔다. 스칼렛 오하라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이다. 시대 배경이 미국 남북 전쟁인 극중에서 상류층 가문의 딸인 스칼렛 오하라는 허리가 잘록하고 치마가 풍성하게 퍼지는 드레스를 입고 나온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1930년대에 제작되긴 했지만 워낙 유명한 고전 영화라 번역가는 누구나 스칼렛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거라 생각하고 원문 그대로 번역했다. 나도 그 표현은 수정하지 않고 방송국에 넘겼다. 그런데 방송국 관계자는 스칼렛 오하라가 누군지 모른다며 시청자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다른 표현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같아.”라고 수정했다.      


스칼렛 오하라를 아는 시청자들은 그 번역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지만 번역가는 “혹시 모를 수도 있는 시청자 및 관객”까지 고려해 번역을 해야 한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원문을 그대로 살릴 것이냐, 쉽게 일반화시킬 것이냐.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만큼 번역가에게는 항상 '그것이 문제로다'.     


달시 파켓 역시 번역할 때 머릿속에 다양한 계획을 세웠을 거다. 대사에 담긴 한국 문화 및 정서를 그대로 살릴지 말지 수없이 고민하는 한편, 때로는 영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원문의 대사를 창작에 가까우리만치 과감하게 비틀고 변주했으리. 그리고 그 계획은 아주 제대로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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