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하는 일이 뭐냐고?
글쎄... 내가 무엇으로 '먹고 살고 있느냐'를 먼저 짚어야겠다. 바로 '물리치료'다. 잿밥에 더 관심이 가 들어간 곳에서 가능한 미래 진로는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하는 물리치료사'가 유일하다시피 했다. 몇 십년이고 시간을 쏟을만한 길이 아니란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과 공부 자체만 보자면 나쁘지는 않았다. 외우는 머리가 나쁘지 않아 성적은 좋았으니. (자랑이 아니라 시험기간마다 똥줄이 타는 심정으로 죽어라 외우면 가능하다.)
물리치료사 : 환자와 락포를 형성해 그의 재활 과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방법으로 치료해 환자의 재활을 돕는 자질이 필요한 직업. 거기에 졸업 직후부턴 환자를 보기 위해 온갖 교육들에 월급을 쏟아붓고 주말을 쏟아붓는 일을 몇 년이고 반복하는 노력이 필수적임.
보람차게 일하고 있을 다른 물리치료사분들께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이건 아니었다. 이것밖에 할 수 없었더라면 학생 때처럼 죽어라 배우고 죽어라 치료하다가 나름대로 이 일에 정착해 보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만, 졸업 후의 내 목표는 명확했다. '개인 병원'에 취업해서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치료 노동을 하며 돈을 버는 것.
그렇게 신입 물리치료사가 들어야 한다는 기본 세미나조차 들어본 적 없이 4년차 물리치료사로 현재도 열심히 근무 중이다. 물리치료사로서 아무런 발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 6일 근무를 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있다. 일하는 내내 짜증이 날 때도 있고, 역시 나는 이 일을 할 성격은 안 되는가 싶다가도 시간만 지나면 별 일 없이 급여를 안겨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배운 게 있다면 사회 생활하는 법과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법, 청소하고 물리치료실을 관리하는 법, 환자를 대하는 태도 정도일까. 스트레스가 죽을만큼 클 일도 없고, 육체노동 강도가 적당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 코딱지만큼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법도 덤으로 배우긴 했다.
정작 '의미있는 일'로 여기며 현재 하고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1. 유기견/묘 보호소에서 봉사하는 것
2. 비건을 실천하고 알리는 것
3.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고, 일을 꾸미고, 깔깔 웃으며 어울리는 것
- 동물 교감, 비건, 페미니즘 등
4. 읽고 싶은 책을 읽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것
5. '글'로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걸 쓰는 것
가만 보면 대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일들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돈 되는 일이 없다. 이 일을 한답시고 돈을 쓰면 썼지. 그런데도 다섯 가지 일들이 참 재밌다. 그것도 매우 진지하게. 전부 5년이 넘게 이어가고 있는 일들이니 앞으로 몇 년 뒤엔 이 중에 '돈'으로 환원될 만한 게 있을 거라 믿고 싶다. 재밌는데 돈도 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으니까. 돈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상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돈이 되면 지속 가능하게 이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동물 교감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고, 온갖 글과 웹소설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 에세이도 출판해서 수익을 내보고 싶다. 비건이 익숙하지 않은 비기너들에게 동기부여와 힘을 북돋아 주는 일을 하고, 사설 보호소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해보고 싶다.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으려면 실력을 키워야겠지. 아, 그런데 그렇게 건설적인 일을 하기엔 천성이 게으르고 한없이 게으르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생각만 하고 실천은 잘 하지 못한다. 머릿속에선 우사인 볼트 저리가라 뛰어다니고 있는데. 과학자들의 연구를 모아 정리한 책들은 하나같이 '인간은 원래 게으르다. 스스로 의지력을 지속시킬 수 없게 생겨먹었다. 그러니 외부 환경을 목표를 이루기 알맞도록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도 그래서 이러는 것뿐이라 변명한다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할 일이 많다. 오늘도 다시 정신을 차린다. 목표로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는 환경을 셋팅하고, 미루지 않고 바로 바로 실행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타이트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일단 시작하고 봐야 한다.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