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던 복싱의 타이슨과 종합격투기의 하빕
지난 10월 25일, UFC 254 메인 이벤트 라이트급 챔피언 전으로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와 저스틴 게이치가 맞붙었고, 2라운드 트라이앵글 초크로 하빕이 승리를 거두었다. 하빕은 경기가 끝난 뒤 바닥에 엎드려 세 달 전 코로나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 없이는 경기를 뛰는 게 의미가 없다며 29전 29승 무패의 기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코너 맥그리거와 같은 쇼맨십, 스타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UFC 선수 중에서 역사 상 가장 강력한 챔피언 중에 한 명으로 남은 하빕과 그의 아버지를 보면서 묘하게 마이크 타이슨과 커스 다마토의 관계가 오버랩됐다. 이 둘을 통해 압도적인 챔피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생각해보았다.
1. 훌륭한 코치
타이슨의 코치 커스 다마토는 그의 나이 40-50대 시절에 이미 두 차례 세계 챔피언을 만든 경험이 있었고, 70대에 타이슨을 키워냈다. 소년원에서 복싱을 가르치던 바비 스튜어트가 타이슨의 재능을 알아보고 다마토의 체육관에 데려왔고, 헤비급 선수로서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펀치의 정확도와 스파링에서의 근성을 보고 다마토는 챔피언의 가능성을 봤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마토가 키워낸 챔피언들의 공통점이 모두 어릴 때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고, 아래와 같은 엄청난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아주 무섭거나 치욕적인 일들을 겪는다. 그 상처들은 그들의 재능과 인성 위에 막을 한 겹씩 한 겹씩 형성해 위대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걸 막는다. 선생으로서 해야 할 일은 그 막들을 걷어내주는 것이다."
하빕의 아버지인 압둘마납도 마찬가지로 본인이 레슬링 선수 출신이며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코치 등을 역임하면서 이미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수차례 육성한 경험이 있었다. 하빕은 9살 때 곰과 함께 레슬링하는 영상으로 유명한데, 13세부터 본격적으로 레슬링을 배우기 시작해서 유도, 컴뱃 삼보(주짓수와 유사한 러시아 무술)에 이르기까지 그래플링 기술을 탄탄하게 쌓는데 아버지의 코칭이 큰 영향을 미쳤다.
2. 코치 이상의 특별한 관계
다마토는 타이슨의 양아버지로 본인의 집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훈련을 시켰다. 예전 인터뷰 영상을 보면 본인은 늙고 병들었지만, 타이슨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본인이 더 살아가는 모티베이션이라고 하고, 타이슨 역시 본인은 원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다마토라며 깊은 애정을 표현한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타이슨이 중년이 되어 찍은 다큐에서 역시, 다마토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면서 타이슨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잘 잇지 못했고 우리는 굉장히 특별한 관계였다고 말한다. 특히 다마토는 항상 자기에게 Great, Great, You look perfect라며 끊임없이 칭찬을 했고 처음엔 그게 너무 어색해서 이상하게 쳐다보곤 했다고 한다.
하빕 역시 평소에 본인이 승리를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경기 후 아버지로부터 칭찬받기 위해서라고 밝혔었다. 그 외에도 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지난 7월 코로나로 인해 압둘마납이 사망한 직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하면서 그때 이미 이번 경기가 취소되거나, 어쩌면 은퇴할지 모른다고 추측할 정도였다. 타이슨에 비해 하빕의 훈련 영상과 에피소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몇몇 남겨진 영상을 보면 압둘마납 역시 매우 엄격한 모습을 갖고 있으면서도(훈련시간 10분 늦으면 약속과 원칙에 대해 한 시간씩 훈계한다고), 다게스탄의 아이들을 모아서 무료로 레슬링을 가르쳐주는 따뜻한 모습도 있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 중에 하나는 하빕과 레슬링 연습을 하면서 '아무도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북돋아 주는 모습이었다.
3. 만들어진 멘탈
타이슨과 하빕 모두 경기장에서는 냉철한 야수와도 같은 모습이지만, 실제 성격은 둘 다 비교적 내성적이고 또 감정적인 모습도 자주 보인다. 타이슨은 인터뷰에서 '나는 싸우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싸움 뒤에 따라오는 보상(After effect) 때문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추측해보건대 처음부터 챔피언의 마인드와 멘탈을 갖고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이슨은 훈련 과정을 얘기하면서 다마토가 복싱 경기의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신경 썼다고 밝혔다. 아래는 '두려움'에 대해 다마토가 자주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두려움은 친구이자 적이다. 마치 불과 같다. 컨트롤만 할 수 있으면 널 따뜻하게 해 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너와 네 모든 걸 태워 버릴 수 있다. 초원을 달리는 사슴을 상상해 봐라. 반대쪽 덤불 속에 퓨마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느껴지는 두려움은 곧바로 생존을 위한 자연의 섭리로 작용한다. 평소에는 5~10피트만 뛸 수 있었던 사슴이 두려움 때문에 15~20피트를 뛰게 되지 않느냐.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두려움이 없으면 죽는다. 두려움은 우리를 싸우도록 일으키는 자연의 힘이다. 영웅과 소인배가 느끼는 두려움은 똑같다. 다만 영웅만이 그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설 뿐이다."
타이슨이 경기장에 들어서서 링에 올라가는 순간을 묘사하는 걸 보면 '링에 가까워질수록 자신감이 점점 차오르고 링에 올라간 순간 누구도 나를 이길 수 없다는 자신감이 가득 찬다. 상대 선수와 눈을 마주치면, 그는 두렵지 않은 척 하지만 이미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고 나는 이미 이겼다(I got him)'
4. 재능 + 노력 + 새로운 전략
이건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가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 생각한다. 타이슨의 훈련 루틴을 보면 새벽같이 일어나 뛰고, 하루에 윗몸일으키기 2000번, 팔굽혀펴기 500번, 스파링/기술훈련, 줄넘기/자전거 등으로 빼곡하게 하루 일과가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특히 목 훈련하는 건 영상으로도 남아있는데, 타이슨의 목은 21인치로 웬만한 펀치로는 잘 다운을 당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단순히 열심히 한 것 외에 타이슨과 하빕 모두 기존 선수들과는 매우 다른 특징이 있었고, 이러한 새로운 접근이 이들을 특별하게 만들었는데. 타이슨의 경우 헤비급임에도 불구하고 라이트급 선수와 같은 움직임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본인 자신도 오후에 훈련이 끝나고 나면 저녁에 라이트급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반복해서 보면서 그들과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emulate)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 경기를 봐도 상대적으로 짧은 리치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유연함으로 주먹을 요리조리 모두 피하면서 핵펀치를 날린다. 하빕의 경우에도 단순히 그래플링에 강점을 가진 수준이 아니라 주짓수 블랙벨트든, 올림픽 레슬링 메달리스트든 그냥 압도하는 스킬셋을 가졌다는 점과 함께 상대적으로 열세인 타격이 결점이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맷집과 스태미너로 보완을 했다는 점에서 기존에 없었던 유형의 선수이다. 일단 테이크다운 후 케이지 구석으로 몰고 가면 상대 선수는 땀으로 머리가 흠뻑 젖고, 마치 종이장 구겨버리듯 경기를 끝내 버린다.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가 되는 게 챔피언이라고 한다면 위의 4가지는 어떤 영역에서도 공통된 요소들일 것이다. 나는 어떤 영역에서 챔피언이 되고자 하며, 잘 가고 있는 건지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