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인터뷰 + 6월 돌아보기
2023년 7월 18일 화요일, 곡성에서 핸내가
친구들에게 보내는 15번째 메일 '나로 살기로 핸내(나살핸)'
핸내, 오랜만이에요. 계속되는 비 소식과 사고 소식에 착잡한 마음이 솟아나네요. 모두들 안녕하시죠? 저는 비가 오는 날엔 밭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거나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요. 지금 시기엔 대체로 심고 거두는 작물이 없어 풀 관리만 해주면 된다네요. 비가 오니 풀이 쑥쑥 자라더라고요. 밭이 풀밭이 됐어요..ㅎㅎ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네요. 이번 한 달... 왠지 눈 깜빡하면 지나있을 것 같아요. 곡성, 서울, 광주, 강진 순천, 여수, 제주, 아산에 오가는 7월입니다. 모두들 안전히, 푸릇한 여름 보내길 바라요. 오늘은 저의 요리선생님이자 생활 전반에 있어 노하우가 많은 진숙을 소개할게요.
< '이웃의 이야기를 담다(이이담)' 프로젝트 >
지난 6월 15일 목요일 오후, 자자공 공동일정으로 퇴비간을 만들었다. 퇴비간은 퇴비(똥거름)를 만들기 위해 생태화장실에서 나온 대변과 쌀겨, 짚을 섞어 발효시키는 곳이다. 마을에 나뒹구는 나무 팔레트를 구해 세우고 수평을 맞추고, 드릴로 못을 박아 완성했다. 일을 마치고 농막에 들어와 샤워하려 했다. 방금 퇴비간 만드는 법을 알려준 바람이 농막 데크 앞에 계속 머물렀다. 모하지 손님들이 오기 전에 데크를 깔끔하게 보수한다는 것이다. 옆에서 진숙이 도왔다. 결국 나도 나와서 드릴을 다시 들었다. 있는 힘껏 드릴을 밀어 못을 박았다. 일을 끝낸 기념으로 셋이 데크에 앉아 수제맥주를 깠다. 대화를 나누다 바람은 먼저 갔고 진숙과 둘이 남았다. 오래전에 이미 진숙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두었었다.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 계속 미루다가 결국, 일단 시작해 보았다.
"아는 대로 소개하세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역시나 예상치 못한 반응의 진숙. 나는 늘 진숙을 나의 요리선생님이라고 소개한다. 진숙은 비건이며 제철인 풀, 채소를 활용해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를 한다. 요리할 때 진숙 옆에 있으면 여러 팁을 얻어갈 수 있다. 참고로 진숙은 7번째 나살핸 '내가 먹고 마시는 것' 편에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직조(*실을 엮어 천을 만드는 것)로 전시회까지 열었던 직조 장인이다. 진숙은 손바느질로 바지와 모자, 티코스터쯤은 뚝딱 만들어 낸다. 나는 진숙에게 터진 옷 꿰매기, 단추 달기, 복주머니 만들기를 배웠다. 취미로 기타를 친다. 기타를 칠 때면 마치 기타리스트 김태원처럼 진지한 얼굴에 고개가 약간 떨궈진다.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우리는 모하지 때 함께 공연한 영상을 보며 많이 웃었다)
웃음소리는 크고 유쾌하지만, 성격은 차분한 편이다. 나에 비해 리액션은 작은 편이나, 진숙의 작고 새로운 리액션을 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무엇이든 찔끔찔끔하는 편이고 진숙은 한 번 하면 꾸준히 하는 편이다. 그래서 요리도, 직조도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만큼 능숙하다.
진숙은 자자공 1기(2019년) 때부터 자자공과 인연을 맺어왔다. 매년 한 달 혹은 며칠을 곡성에 머물며 자자공 사람들과 함께했다. 때로는 직조 선생님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곡성에서의 정착을 매년 고심한 끝에! 이번 연도 자자공 일년살이에 참여하고 있을뿐더러 벌써 마을 근방에 집을 구해 다음 연도부터는 본격적으로 곡성 정착 생활을 시작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농사를 짓다 보니 농사는 익숙했어요. 어릴 땐, 농사가 힘들어 보여 절대 안 하겠다고 했어요. 농사일을 해봤기에 더더욱 농사를 짓겠다고 쉽게 말할 수 없었죠. 하지만 보고 배운 것이 굉장히 무서운 것이더라고요. 제가 작물이 길러지는 걸 직접 봤잖아요. 그리고 맛도 봤고요. 그래서 시중에 파는 것을 아무거나 살 수 없겠더라고요. 참고로 부모님은 생태농업을 하시는 분들은 아니셨어요. 비닐과 농약을 사용하는 농사였어요. 된장을 만들기 위해 콩을 기르고, 고추장을 만들기 위해 고추를 기르는 것이 당연했어요. 늘 음식을 해 먹었기에 사먹는 것이 익숙지 않았어요. 입맛에 맞지도 않았고, 재료의 출처를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 먹는 것은 확실히 엄마가 보내준 재료들과는 다른 맛이 나더라고요. 뭔가 인위적인 맛이랄까?"
"대안학교 교사로 9년 동안 일하며, 농부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농부들이 멋있게 보였어요. 만약 제가 일반회사에 다녔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겠죠? 저는 대학에서 교육학과 생물교육을 전공했어요. 교생을 나가보니 일반 학교의 시스템이 너무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곳을 찾아봤어요. 세상에 그런 학교만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학교의 형태는 다양했어요."
"대안학교 교육과정은 마치 자자공 일년살이 프로그램 같아요. 초등학생 아이들과 농사짓고 시골음식 만들고, 모내기와 추수를 해요. 저는 입사 하자마자 담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완전히 내던져진 상태에서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또 스스로 공부하며 수업을 준비했죠. 아이들과 농사를 지으며 농사가 왜 중요한지 가르쳤어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입장으로서 저 또한 본을 보이며 살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농사를 짓겠다고 점차 마음먹게 되었죠."
"그 공간이 좋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았어요. 분기마다 2주씩 학교에서 여행을 갔어요. 일 년 중 절반 이상은 여행을 다닌 것 같네요. 선생님들끼리 돈독했어요. 가족보다 더 많이 만나니 동료 그 이상으로 관계를 맺었던 것 같아요. 삶을 많이 공유하기도 했고요. 가깝다 보니 서로 좋기도 하고 성질이 나기도 했죠."
"언제 어느 때고 술을 마실 수 있고, 시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요.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게 좋아요. 저는 혼자 밥 먹는 게 싫어요. 맛도 없고. 요리하는 게 재민데 혼자서는 다 못 먹잖아요."
"이곳에서 완전히 평온하진 않아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고, 같이 살고 있다 보니. 날마다 얘기할 게 있어요.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이 수십 가지씩 존재해요. 물러설 수 없는 지점도 있고요. 예를 들어, 모하지에서 두부 만들기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와 같이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누구는 일을 한 번에 끝내기를 원하지만, 어떤 이는 힘들어서 나눠서 하고 싶어 하는 것. 뒷마무리와 청소, 소소한 것을 신경 쓸 수 있는 사람과 잘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다양하잖아요."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게 싫고, 모든 것에 있어서 자자공이 일 순위에요. 왜냐하면 저는 당장 내년부터 이 마을에서 혼자 살아야 하여, 삶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이것저것 할 게 많고, 고마운 존재들도 많아요. 우리에게 이만큼의 시간을 할애해 주는 것이 고마워요. 자자공 자체에 대한 고마움과 둘레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커요."
"최소한의 장을 보기는 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인터넷 택배를 시켜야 할 때 불편하죠. 그럴 때 종종 불합리한 구조를 느껴요."
"최소한의 지출, 그 정도의 돈은 벌어야겠죠. 농사와 균형을 잘 맞춰서요. 작업실을 열고 싶어요. 직조든 바느질이든 삶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수업도 열고 싶고, 만든 걸 팔고 싶기도 해요. 먹는 것과 관련된 일도 하면 좋겠어요. 식당을 연다든지요."
"자기 앞가림"
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나는 예초기를 사용할 때, 끔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우선 너무 무거워 어깨가 아프고, 시끄럽다.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날이 나에게 날아올 것만 같은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진숙의 SNS를 보고 다르게 생각해 보게 된다.
"(진숙의 SNS 글 인용) 무지막지한 소리도 싫고 휘발유 냄새도 싫던 예초기. 처음 등에 메고 배우던 날 10분만 돌렸는데도 헉헉거렸다. 너무 무겁고 칼날 달린 손잡이 끈도 내 몸에 안 맞아서 팔 힘으로만 온전히 들어야 하고 요령도 없었고. 칼날이 굉음을 내며 돌아가니 겁도 나고. 그치만 하면 는다 했던가. 두 번 하고 세 번 하니 요령도 생기고 몸에 맞게 줄도 맞추고 좀 안 맞아도 팔에 생긴 힘으로 잘 들고 풀을 벤다. 니가 바뀔 일은 없으니 내 몸을 그냥 너에게 맞춰야지. 이젠 속도를 좀 올려도 겁이 덜 나고 빨라야 속이 시원하다."
이 글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똑같은 일을 대하는데 반응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나는 마냥 미워했던 것 같다. 예초기를 사용하는 중에 너무 힘들어서 '아... 예초기를 꼭 사용해야 한다면 나는 농사 때려칠래.'라고 생각했다. 표정은 계속 일그러진 채 '너무 하기 싫어'를 되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나약한 정신력이었다...^^
"저는 예초기 사용이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초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그 많은 풀을 베는 것이 더 힘들 거라고 생각했고요. 예초기 냄새나 소리가 너무 싫었지만, 그게 있어 큰 도움이 되잖아요.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고, 오기도 생겼어요. 뒷일을 생각해 보세요. 예초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 그니깐 풀을 베지 않는다면 그 일은 없어지지 않잖아요. 일의 총량은 변하지 않아요. 어쨌거나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죠."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며 새삼 진숙이 멋지게 느껴진다. 생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 사고하는 방식에서도 배울 점이 참 많다. 농사도, 직조도, 요리도, 기타도 늘 즐겁게 해내길 바라며! 진숙의 곡성 정착 생활을 응원하며 마무리한다.
1. 이달의 노래: 나에게서 당신에게(정우) "모하지 공연했던 곡, 그 이후로는 안 듣는..^^"
2. 이달의 책: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어렵게 느껴질 때(일홍) "친구가 선물해 준 책! 사실 이런 류의 힐링에세이에 왠지 거부감이 있었는데,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뀜. 에세이가 주는 위로가 심히 따뜻했음."
3. 이달의 영화: 수라 "제발 모두 보세요!!! 수라갯벌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옴. 오랜 시간 갯벌을 지키는 시민생태조사단과 인간에 의해 물길이 막혔었음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살아가는 생물들을 보며 희망을 느낄 수 있던 영화"
4. 이달의 음식: 간단하고 맛있는 팥빙수 "풀이 작년에 재배한 팥으로 진숙이 팥조림 만들어서 얼려둠! 얼린 팥에 두유만 부어 먹으니 간단하고 맛있는 팥빙수 완성"
5. 가장 많이 먹은 음식: 콩국수 "그 어느 때보다 콩국수를 많이 먹는 해. 집에서 두부 만들면 무조건 해먹음! 더운 여름날 시원하고 고소한 콩국수 한 그릇 아주 좋아."
6. 가장 신났던 순간: 동기들과 모하지 공연 연습할 때 "다시 떠올려 봐도 웃김. 몇 가지 웃긴 포인트가 있었음. 발랄한 노래에 소울풀한 에코의 목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 웃으면서 부르기로 했는데 진숙이 너무 진지한 예술가처럼 기타 치는 것을 봤을 때."
7. 가장 아쉬웠던 순간: 장례 용어를 착각해서 할머니의 입관을 보지 못한 것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며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음."
8. 가장 새로웠던 순간: 넷플릭스 '사이렌: 불의 섬' 봤을 때 "세상에 이렇게나 강하고 멋진 여성들이 존재하다니!"
9. 가장 슬펐던 순간: 사촌 언니들과 조카와 셋이 쪼르록 앉아서 연로하신 할머니를 보고 있었을 때 "건강하세요 라는 말을 더 이상 내뱉기가 어려웠음. 그저 현상태가 편안하길 기도할 뿐."
10. 가장 낭만적이었던 순간: 모닥불 앞에서 동기 두 명과 대화 나누었을 때 "대화가 잘 안 통한다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버스정류장에 머물다가 돌아옴. 다시 대화를 나누며 소통방식의 차이를 인지하고 서로 이해하기로 함."
11. 이달의 잘한 것: 엄마의 말을 듣고 할머니를 뵈러 다녀온 것 "다행히도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뵙고 왔음. 드시고 싶은 것도 사다 드리고 안마도 해드리고 사랑한다고 말도 하고 왔음."
12. 이달의 움직임: 영화 '수라' 친구들에게 홍보하기
13. 이달의 반성: 나의 나약함은 나약한 정신력에서 나온다. "동기들을 보며 많이 반성한 한 달"
14. 이달의 깨달음: 일하기 전에 간단히라도 꼭 아침 챙겨먹기, 일을 할 때 "힘들다, 배고프다." 내뱉는 것 자제하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15. 이달의 농사: 밭농사_ 수확(겉보리, 완두콩, 상추, 보리수 열매), 보리 털기, 고구마 두둑 만들기, 모종 옮겨심기(오이, 수세미, 애플수박, 참외, 쑥갓), 직파(동부콩, 밤콩 직파), 풀 베기 / 논농사_ 논둑 예초, 논둑 바르기(쥐가 풀에 숨어 구멍을 뚫지 않도록), 모내기
16. 주차 별 생각의 흐름
- 1주차) 건전하고 건강한 여수 여행, 사이렌 최고!!!
- 2주차) 할머니가 아프지 않고 편안하면 좋겠다.
- 3주차) 나약한 정신력에 대한 반성... 눈치 보며,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하나 고민 가득
- 4주차) 무기력
- 5주차) 다시 시작! 부지런
17. 한 문장으로 정리한 이번 달: 탈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달
지지난 주부터 쓰기 시작한 글을 이제야 마무리 짓네요. 제 소식을 잠시 전하자면, 저는 잠깐 제주도에 내려왔어요. 7월 중에 돌아가면서 일주일씩 휴가를 다녀오는데요. 저는 아빠 환갑을 맞이하여 순천과 여수 여행을 하고 제주도로 내려왔어요. 장례 때 찾아와 준 친구들을 만나 함께 밥도 먹고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 있어요. 본가에 오니 안정감이 들고 편안하네요.
요즘 나살핸을 제때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일요일에 일정이 생기는 경우가 잦고, 쓰고 싶은 사건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발송 주기를 당분간 이 주에 한 번으로 변경하려고 해요.
오늘 처음으로 인터뷰 형식의 나살핸을 발행해 보았는데 어떠셨나요? 저는 인터뷰 핑계로 함께 사는 이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고, 또 제 고민을 나눌 기회가 생겨 좋네요. 나이가 들수록 타인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줄어드는 것 같은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다시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네요!
모두들 이번 주도 안전히, 무사히 살아내길 바라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