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1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한 신당이 있다. 바로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지향 90년대생 무당'이 운영하는 칼리신당이다. 영혼의 나이와 전생을 알 수 있다는 소식에 혹해 전화상담을 신청했다. 햇살이 잘 드는 식탁 앞에서 상담을 진행했다. 요즘 어떻게 사는지, 무슨 고민을 갖고 있는지, 내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올해 새롭게 아동복지교사 일을 하고 있어요. 돌봄센터에서 문해력 수업을 해요. 일은 재밌고요. 아이들 만나서 에너지를 얻고 와요. 동시에 독서나 문해력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해볼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무당은 아무 말 없이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신기하네요!”라고 답했다. 그의 점괘와 닮아 있다는 반응이었다.
“올해는 대운이 바뀌는 해예요.” 대운은 10년 단위로 바뀌는데, 내 사주 상 8살, 18살, 28살에 바뀐다고 한다. 바로 지금이 그 시기인 것이다. 그를 방증하듯, 올해 들어 내 삶은 작년과 차원이 다르게 바뀌었다. 무진장 활기가 넘친다. 단 몇 주, 몇 달 차이로 사람 마음이 이리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이따금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작년 이맘때쯤 이불에서 몸을 일으키기 어려울 정도로 무기력감에 빠져있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숏츠를 보거나 폰이 버티지 못해 꺼지면, 신세를 한탄하며 시간을 보냈다. 눈물을 자주 흘렸다. 남과 비교해 모든 게 부족해 보였다. 심지어는 스스로를 폐 끼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까지 이르렀다. 일, 이삿짐 정리, 집안일, 농사, 진로, 관계 어느 것부터 손 보아야 할지 감 잡을 수 없었다. 어쩌면 곡성이 나와 맞지 않는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이것저것 시도했다. 새로운 시도는 대체로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을 맞이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애인과의 다툼은 반복되고 농사와 일에 대한 자신감은 떨어지기만 했다. 말도 안 되게 새로운 시작을 이어가기 어려운 해였다.
어쩌면 대운을 맞이하기 위한 필연적인 수난이었을 것이다. 신은 내게 가야 할 길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쏟아지는 변화를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내느라 부단히 애쓴 한 해였다. 해의 끝이 다가올수록 내게 남겨야 할 인연과 행위는 분명해졌다. 한편, 도저히 자리 지키기 어려운 일 또한 선명해졌다. 그 끝자락에서 나는 직감했다. 이듬해는 올해와 달리 아주 활달한 해가 펼쳐질 것임을. 지금의 언어를 빌리자면, 대운을 받아들일 아량이 생겼다는 말이겠다. 무당은 내게 말했다. “새로운 공부를 하기 딱 좋은 시기예요. 영적으로는 영혼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지금부터 이어질 10년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세요. 후에는 모든 경험이 엮어지며 누군가 살리는 일을 쭉 할 거예요.”
기독교 모태신앙,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나지만 굳이 거금 들여 신점을 보게 된 이유를 찾았다. 삶의 답을 누군가 선명히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내 삶을 표현할 언어를 찾고 싶었다. 이미 정해진 처지인 '운명'은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 '운명'의 말을 빌려 내 삶을 통찰할 언어를 산 것이다. 대운이 바뀐 올해, 왠지 모를 자신감이 글방과 일터, 풍물, 요가로 이끌었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도 되는가, 확신 없는 마음이 들던 차에 무당을 만나 그 모든 걸 감당할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됐다. 내 영혼의 나이* 31살, 1살의 맑음과 30대의 분별력, 왕성함을 가지고 말이다. 무당의 말을 꼬옥 붙잡고 싶어졌다.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그냥 믿고 싶다. 그대로 나아가고 싶다.
무당은 내게 창조적인 작업을 권했다. “시각작업을 하고, 글을 쓰고 음악도 만들어주세요. 그것이 곧 핸내님에게 신앙생활이 될 거예요.” 글을 쓰는 게 어떻게 신앙생활이 될 수 있을까? 언제부터 글이 내 삶에 필수불가결한 영역이 된 건지 대뜸 궁금해진다. '신앙'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본다.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 대상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 사랑, 의뢰심을 갖는 일.' 아마 내게 글쓰기는 믿음을 굳건히 하는 일이며, 사랑을 이어가는 행위가 될 것이다. 칼리님은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듯 말했다. “매일매일 글을 써주세요." 그의 말이 없었더라도 프리라이팅***은 매일 이어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로 인해 나는 확신에 찬 상태로, 언젠간 내 글이 누군가 살릴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은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까?
*모든 인간은 영혼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 육체의 나이가 들어도 영혼의 나이는 변하지 않는다. 각자 영혼의 나이에 맞는 리듬으로 현생을 살아가길 권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f99776b33ac84091b659b470d67be375
***Pre/Free-writing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거침없이, 수정없이 적어나가는 글쓰기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