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서, 출퇴근 지하철에서 조금이라도 짬을 내 읽으려고 한다. 버스는 멀미를 해서 시도할 수 조차 없고, 지하철 이동시간이 짧지만 귀중한 나를 채우는 독서시간이다.
그래서, 조용한 지하철에서 조용하지 않은 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면 힘이 빠진다. 정도에 따라서는 화도 난다.(물론 겉으로 표현은 않는다. 자리를 옮기거나, 그도 어려우면 체념할 뿐)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끊기는 게 아쉬울 만큼 재밌는 책이라 출근 때도 덮기가 아쉬웠던 책을 읽던 참에, 연달아 통화를 연거푸하는 이를 만났다.
첫 통화는 엄마에게였다. 목소리 음량이 보통이 아니어서, 책에 집중이 안되었던 지라 본의 아니게 내용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는 병원에 오래 계신 모양이었고, 전화하는 이는 딸이지만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딸은 밝은 목소리로 밥은 잘 먹는지, 병원은 덥지 않은지, 연신 과할 정도로 밝은 투로 전화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꼭 안부전화를 지금 해야 하나, 그리고 이렇게 크게 해야 하나 싶었다.
어느새 전화가 끝이 났다. 잠시뒤 내 앞에 앉아있던 그녀가(나는 서있었고, 그녀는 내 앞에 앉아있었다) 손을 휘두르는 게 보였다. 언뜻 보니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어쩐지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저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부모에 대한 애틋함 정도로 생각했다.
잠시뒤 그녀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뭔가 실수를 한 모양이고, 이에 대한 상사의 반응은 너 그딴 식으로 일하면 짤라버리겠다, 같은 거였다고 했다.
그제서야 모든 일련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폭언을 들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고통, 회의에 찬 퇴근길, 엄마나 친구에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게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건 간에.
중간 어느 지점부터는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걸 눈치채지 않게 하기 위해서 책을 계속 읽는 척했다. 갑자기 자리를 뜨거나 옮기지도 않았다. 어느새 내가 내릴 역이 되어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개찰구까지 나가는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먹고사는 것, 그게 아닌 것,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평온하게 집에 가는 발걸음이 괜스레 살짝 무거워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