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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비스트 Jun 07. 2024

친팔레스타인 캠프:신자유주의 대학의 EDID와 스펙쌓기

뉴욕 콜롬비아 대학의 학생 시위대가 불을 지폈다. UCLA와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캐나다의 토론토대, 맥길대를 비롯 여러 대학들도 시위에 합류했다.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인종학살의 주범인 이스라엘 정부를 향한 비판, 그리고 물과 식량이 부족해 비참히 죽어가는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서다.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군부와 연결되어 있는 군사무기 제조업체 및 기타 기업들과의 관계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 달여전,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동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던 중이었다. 마침, CNN을 틀어놓은 체육관 스크린으로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엄청난 수의 경찰이 콜롬비아 대학에 들어가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두드려(?) 잡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론(?)이 원체 과장되고 센세이셔널하게 포장하는 것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화면으로 보이는 모습은 흡사 전쟁과도 같았다. 엄청난 국가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불한당들을 때려 잡는듯한 경찰의 긴급한 모습과 흔들리는 카메라 엥글이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어이가 없다고 해야하나.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대학생들이라면 당연히 생각하고 행동할 만한 것들이 "안전(safety)"이라는 핑계로 "안전하지 않은" 경찰폭력이 자행되다니! 게다가 콜롬비아대 학생들은 무기를 소유하지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또 다른 미국 대학에서는 친이스라엘 캠프를 지지하는 여교수의 팔을 무자비하게 뒤로 꺽어 수갑을 채우는 일도 벌어졌다. 경찰폭력을 동원하여 시위대를 공격한 기타 장면들은 페이스북이나 유툽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사실, "안전"을 위협하는 당사자들은 이스라엘 우익정부와 그들을 지지하는 친이스라엘 자본가들,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의 명령을 따라 생계를 유지하는 경찰들이지 않나? 언론보도로 본 경찰폭력은 최류탄이 터지고, 전경과 백골단이 곤봉을 들어 학생들을 때리며 체포해 가는 한국 80년대 캠퍼스와 완전히 겹쳐 보였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타 대학들과 비교해 작은 규모이지만, 런던의 웨스턴 대학에도 친팔레스타인 캠프가 만들어졌다. 학기가 끝나 인적이 드물었지만, 시위 캠프가 없었다면 웬지 아쉬웠을 것 같다. 그래도 나름 대학이지 않은가! 


한편 퀘벡 대법원은 맥길대학에 진을 치고 있는 시위 캠프를 대학이 철수시킬 수 없다고 판결을 했다지만, 극우인 더그 포드 (Doug Ford)  주정부하에 있는 웨스턴 대학이기에 캠프의 안위를 종종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은 첫 며칠간은 밤을 새지 않더니, 몇 주 전부터 24시간 캠프를 설치하고 평화로이 시위를 하고 있다. 시위대는 웨스턴 대학이 이스라엘과 손잡고 있는 기업과 군수무기업체에 투자하지 말 것, 그리고 시위 참여자에 대한 보복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대에 의하면, 웨스턴 대학은 18.3 million과  $465 million을 각각 이스라엘 지원 군사업체와 기타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따로 글로 쓸 계획이긴 하지만, 대학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순수교육기관이 아니다.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주식,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로 이윤을 축적하고 부유한 기부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한편, 교수와 직원의 노동권을 억압하고 학생소비자들에게 교육 "상품"을 비싼가격으로 교환하는 데 그 사명이 있다). 


시위 참여자들 중 여러명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도 하다. 개인들의 신상이 밝혀져 대학과 친이스라엘 극우들로부터 받을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80, 90년대 한국대학의 시위자들이 정보기관의 신분 체취를 피해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하다.  


한달 여 지속되어 오고 있는 캠프에 대해 웨스턴 대학은 5월 1일부터 지금까지 무려 10번에 걸쳐 성명서를 내고 있다. 미국, 캐나다 대학들 다들 비슷한 류의 성명서를 내고 있는데 그것들을 따로 모아서 담론분석을 하면 아주 흥미로울 것 같기도 하다. 예컨데, 아래와 같은 내용 말이다. 


       "캠퍼스 농성 시위가 3주째 접어들면서 점점 더 우려스러운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안전하지 않고 불법적인 행동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며, 대학의 핵심 가치 또한 위협받고 있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평화로운 시위 기준을 벗어나는 활동에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도난, 기물 파손, 폭행 행위 등 몇몇 사건이 발생했으며, 농성과 관련이 있는 누군가로부터 증오 언사 사용 혐의도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현재 적극적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캼퍼스 커뮤니티를 위험에 빠뜨리는 어떠한 활동도 용납할 수 없으며, 어떤 종류의 증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웨스턴 대학은 평화로운 시위 권리를 지지하지만, 지난 금요일에 말했듯이 현재 캠퍼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더 이상 그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불법적인 행위 외에도, 이 농성 시위는 일부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환영받지 못하고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배타적인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이는 우리 대학의 평등, 다양성, 포용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며다양한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축하하는 우리의 노력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대학은 현재  런던 경찰 연락팀과 협력하여 농성 시위 주최자들과 소통하여 평화롭게 농성을 해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농성 시위는 불법적이고 안전하지 않기에 이제 끝낼 때입니다.

       학생들이 함께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간청합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현재 상황에 대해 우리 대학의 사명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최선의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학생들과 더 논의하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대학본부는 내일 학생들과 또 다른 회의를 예정했습니다."


사실, 저 성명서의 내용에서 어떤 가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온전한 과장과 기만으로 가득찬 문구들이라 실소가  나왔다. 대학의 핵심 가치가 어떻게 위협을 받는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난, 기물파손, 폭행 행위도 생소하다. 매번 그 옆을 지날 때마다 위협을 느끼거나 폭력행위를 목격한 적도 없었다. 시위자들은 다만 평화로이 기도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고 연사를 불러 짧은 연설을 할 뿐이었다. 근처 굴다리 밑 길바닥에 "free palestine"이라 적힌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물파손이라 칭하는 것일까? 물론 그 글귀는 그 다음날 바로 지워졌다. 혹은, 부자 극우 기부자가 성명문을 통해 시위대를  문제시하라고 요청한 것일까? 


여름 캠퍼스는 인적이 드물어 도대체 누가 얼만큼 위협을 느낀다는 지 알수도 없을 뿐더러, 시위대에게는 안됐지만 관객이 없어 사실상 시위효과도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토론토대나 맥길대는 다운타운에 위치해 나름 효과도 있을 터이지만, 웨스턴대는 일반시민들이 다니는 곳과 떨어져 있어 매우 불리하다. 


성명문에서 가장 모순적인 것은  "평등, 다양성, 포용 원칙"을 내세워 시위대를 공격하는 부분이다. 미국에서 건너 온 EDID(Equity, Diversity, Inclusion & Decolonization) 라는 유행어는 최근 몇년 전부터 온갖 job posting과 대학행정부의 전략계획안, 훈련 및 기타 문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반인종차별과 반식민주의를 논하는 학계에서 강조되던 아젠다가 비판적이고 철학적인 맥락에서 뚝 떼어진 채 오히려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던 행위자들에게 포섭이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EDID를 앵무새처럼 되뇌어야 인터뷰에 성공하거나 승진의 기회가 생기며, 하다못해 상품을 파는 마케팅과 비지니스 스쿨에서도 사용되는 지경이다. 광범위하게 일상적으로 퍼진 이 레토릭이 나와 같은 아시아인을 고용하는 것과 연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일터는 99%가 온통 백인이며, 최근 새로 고용되는 동료들도 마찬가지로 백인 여성들이다.  백인 상급자들도 비행기를 타고 EDID 컨퍼런스에 간다. 컨퍼런스에서 이 직종이 얼마나 백인중심적인지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하지만 백인만을 고용할 뿐이다. 상급자들은 직원들에게 EDID 수료증 취득과 이벤트 참여를 권장한다. 사지선다형 질문에 정답을 찍으면 간단한 수료증을 발급한다. HR에서 제공하는 필수교육으로 EDID를 온라인으로 수강(그냥 온라인으로 녹음된 슬라이드를 듣고 정답을 찍는거다)한 날, 실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좌파운동과 반인종주의/반식민주의 학문이 조롱당한 그런 느낌이었다. 


대학은 행동과 레토릭의 극심한 분리가 일어나는 지점에는 눈을 감고, 그저 EDID를 중얼거려야 스스로가 정의롭고 교육받은 자임을 인정해 주는 것 같다. 나아가 수료증을 이력서에 사용해서 스펙을 쌓으라고 추천하기도 한다. 


심하게 말하자면, 나와 같이 인종화된 사람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정말 공감도 못하면서 오히려 우리들의 고통을 그들이 성공하기 위한 액세사리로, 스펙으로 이용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비판적 학문의 담론이 신자유주의대학 안에 포획, 제도화되면서 일어나는 문제인 것이다. 자본이 모든 것을 취하고 녹여버리는 그 무서운 힘에 EDID 또한 예외가 아니다.  


만일 EDID가 대학의 사명이라면, 오히려 팔레스타인의 식민화와 무기를 사용한 민간 학살 및 물,식량 지원을 방해하는 극우세력에 반대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세계시민으로 교육하겠다며 비싼학비를 내는 국제학생들을 모으는데만 에너지를 쏟을 게 아니라, 가자지구 문제를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시민이 할 일이므로. 


영국 가디언 보고에 의하면, 내달 중순에 이르면 팔레스타인 인구의 절반이 극심한 기아를 겪을 것이라고 한다. 비인간적이고 야만적 일들이 벌어지는 가자지구를 둘러싸고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해야 할 대학이 오히려 EDID 프레임을 이용하여 인문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생각과 행동을 공격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경찰을 동원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신자유주의 대학에서 EDID는 다만 스펙쌓기의 일환이라고 한다면 과장된 것일까? 나는 스펙으로 전락한 EDID가 매우 불편하다. 


#신자유주의대학, #팔레스타인, #가자, #친팔레스타인, #ED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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