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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영 Nov 21. 2024

카렌 암스트롱 <마음의 진보>

나만의 신을 찾아서

나는 어린 시절, 희귀병(망막모세포종)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고 지금까지 수술상처를 가리기 위해 안대를 하고 살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늘 신의 존재를 의심했다. 한 번도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신, 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않는 신, 그런 신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시력을 잃고 안대를 해야 하는 현실을 맞이하며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것은 결함이 되어 내 인생 고비마다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충분한 이유로 작동했다. 사랑했던 사람이 등을 돌릴 때, 사랑은 변한다는 진리보다 상처가 나를 평생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는 비관으로 몰아갔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내겐 결함이 이유가 되고 변명이 되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주어졌을까? 

그러다가 <마음의 진보>를 읽으며 나의 종교관은 바뀌게 되었다. 책 속에서 카렌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공감했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다. 신을 찾아 수녀원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상처를 입고 나온 그녀의 이야기는, 신앙이 항상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카렌 암스트롱은 '서러워하기보다는 차라리 남은 것에서 기운을 얻으련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그의 말처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싶다. 비록 완벽하지 않은 삶이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안다는 것은 단편적인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안다는 것은 내 욕망, 내 본성을 똑바로 읽어 낸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부를 통해 알게 된다. 카렌은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어디로 나아가는지도 모르고 헛되이 맴돌(p.24)”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지만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어둠속에서 벗어나고”있음을 깨달았다. 카렌이 인용한 엘리엇의 <재의 일요일>을 읽으며 신, 자비, 기도 등의 단어를 가까이하지 않은 내가 겸허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본 신성이다. 나는 깨달았다. 신은 하늘 높은 곳에 앉아 인간을 감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을. 종교는 외부의 권위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발견해야 할 내면의 가치였다. 신은 존재론적 실체가 아니다. 수많은 좌절과 시행착오, 절망 끝에 선택한 것은 자신에 대한 긍정이다. 자신에 대한 긍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볼 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은 선물이 된다. 

카렌은 올라가도 올라가도 늘 제자리인 듯 여겨지는 나선형 계단을 밟는다. 그렇게 카렌의 삶은 빛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나를 바로 보고, 타인이 보기에 초라하더라도 내가 온전히 빠져들 수 있고 그 안에 몰입하며, 내가 바라는 일을 하는 것 그 안에 신이 있다. 그것이 카렌이 확인한 지점이다.

어쩌면 종교는 정답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는 경전을 공부하다가 다른 사람 속에서, 의식을 거행하다가, 낯선 사람과 친교를 나누다가 신성을 힐끔 본다. 그래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도 신성하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깨달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 안에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공경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무언가가 있지만 그것은 늘 신비롭게 남고 붙잡으려 해도 쥐어지지가 않는다.”(p.506)

<마음의 진보>는 나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종교는 더 이상 틀에 박힌 교리나 의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살아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이 책은 단순한 종교 서적을 넘어,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줄거리] 카렌 암스트롱은 젊은 시절 수녀가 되어 종교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지만, 수도원 생활에서 큰 좌절감을 느끼고 환속했다. 이후 다양한 종교를 연구하며 종교학자가 된 그녀는, <마음의 진보>에서 종교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냈다. 이 책은 그녀의 자서전적 에세이다. 저자는 종교가 단순한 교리나 의식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다양한 종교를 비교 분석하며,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인간의 공감과 연민을 강조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저자는 종교의 본질은 외부가 아닌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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