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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인경 Jan 04. 2020

캐릭터 중심으로 드라마 읽기

다시 보는 <미스터 썬샤인> 이야기-part 2

<미스터 썬샤인>에는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이 향연을 벌인다. 앞서 조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았다면 이번에는 몇몇 주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멋짊을 장착한 쿠도 히나, 예측 가능한 김희성과 고애신

 나라든 가족이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일신의 부와 명예를 챙기는 이완익을 아비로 둔 쿠도 히나(김민정 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운명을 가장 능동적으로 선택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매국노의 딸, 늙은 일본인 부자에게 팔려간 젊음이란 비극적 설정에 갇히는 대신, 그 댓가로 얻은 부와 ‘이중국적’이란 경계인의 지위, ‘글로리 호텔 CEO’라는 전문직 여성의 위치를 한껏 활용하여 그녀만이 접근하고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을 구가한다. 다른 고관대작 마나님의 복색과 차별되는 화려한 서양 드레스와 긴 웨이브 머리가 상징하는 여성성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배웠다는 펜싱검이 상징하는 남성성의 양극단을 오가면서 다양한 선택지를 스스로 만들고 또 채워가는 것이다. 그 선택지들은 때로는 대담하게 돈과 금덩이를 향하고, 견고한 가부장 세상을 꿰뚫어 균열을 내며, 나름의 방식으로 “의병”하는 길을 따른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생물학적 제약으로 갑갑해 하는 오늘날의 여성이, 다시 태어난다면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멋짊이 쿠도 히나에게 있다.

 그런가 하면 김희성(변요한 분)의 선택은 예측 가능한 지점이 많아 재미가 떨어진다. 그 시절, 부모가 물려준 부에 담긴 부끄러움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식민지 지식인이라면 딱 그런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갔을 것만 같다. 얼마간의 위선과 또 얼마간의 위악으로 헐렁헐렁하게 살다가 우연한 각성의 계기를 맞아 투사의 길로 달려간다는 설정은 익히 들어왔기에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클리셰들이다. 다만, 그래도 김희성이 궁금한 것은 순전히 변요한이란 배우가 연기하는 김희성이 만들어낸 매력 덕분이다. 힘 뺀 연기가 뭔지를 아는, 섬세한 감정선을 가진 배우 변요한의 차기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고애신의 반전

 고애신 역시 반전의 드라마가 제법 들어있다. ‘총을 잡은 대갓집 규수’라는 설정 자체에 매력 포인트. 그렇지만 고애신은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그려지고 홀로는 삶을 선택하지 못하는 갇힌 인물이다. 최고위층이란 신분, 첩첩이 둘러싼 아랫것들, 어딜 가나 이름을 댈 필요가 없는 지명도 등에 기대어 오롯한 본인만의 선택을 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갑갑하게 살아간다. 그런 그녀의 삶에 다가오는 반전은 역설적이게도 패가다. 자신을 보호해준 각종 장치들이 그녀의 고래등 같은 집과 함께 허물어진 뒤에야 비로소 애신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고애신이 그나마 매력적인 것은 김희성을 연기하는 변요한같이 김태리의 연기 덕이다. 젊은 여자 배우 중 그녀만큼 정확한 딕션으로 말하고, 매력적인 톤의 목소리를 지닌 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김태리의 대사는 귀에 착 감긴다. 때로는 밝게 또 때로는 비감하게 그리는 표정 연기도 참 좋다. 두고두고 김태리를 주목하고자 한다.     


드라마를 보는 의미     

 소설가 조정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집필하기에 앞서 지난한 취재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막상 작품을 시작할 때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적은 종이 한 장만을 곁에 두었다고 한다. 작가는 그저 인물들이 살 시대와 공간을 마당삼아 깔아주었더니, 자기들끼리 알아서 밥 먹고 일 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살다가 늙어가더라는 것이다. 그게 곧 이야기도 되고 소설도 되더라는 뒷이야기.

 <태백산맥>의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소설이나 드라마를 쓸 때 작가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좋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작가의 상상 속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인물이 되어 작가와 교감하고 보는 이와 소통하면서 자기 삶을 살아간다.

 드라마를 본다는 것, 세상의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그저 킬링 타임 용도를 넘어,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행위, 나와 다른 시대의 숨결을 느껴보는 추체험으로 깊은 의미가 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의 감수성의 색깔과 농도 또한 변해갈 것이다. 그래도 맛깔 나는 드라마를 만나는 순간, 드라마 속 인물들이 사랑을 시작하고 인생의 다른 갈피들을 만나는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내 삶의 색다른 즐거움으로 오래토록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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