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일기'라는 나름대로 거창한(?) 제목을 붙인 뒤로는, 특히나 일상에서 스쳐가는 생각들을 포획해두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최근에 Quitting(그만두기), Bargaining Power(교섭력), Optionality(선택권)을 키워드로 하여 커리어에 관한 고찰을 하였는데, 그 내용을 글로 옮겨본다. 아무래도 다양한 연차의 독자들 가운데 특히나 같은 처지의 주니어들에게 더 와닿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1. Quitting(그만두기): 현재 짜여 있는 판에서 한 발짝 물러날 때를 판단하기
조직 내에서 괴로움을 겪어 극단적 선택에 이른 사람의 기사를 접할 때는 "그 조직에서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서 생각해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강한 안타까움이 밀려들곤 한다. 그렇지만 막상 나조차도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조직 내에 몸담고 있을 때에는 내가 조직 내에서 보는 세상이 전부고, 조직 내에서의 성과나 평판으로부터 나를 유리시켜 생각하기도 어렵다. 주변을 둘러보면 조직 내지 사회 시스템이 정한 표준적 규격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버겁게 느껴져 강한 우울감을 느끼는 것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늘 잊지 않고 생각해야 할 것은, 감정적으로 괴로울 때 내지는 상황이 내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을 때, 기타 자신이 판단하기에 따라 현재 짜여 있는 판에서 한 발짝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에너지를 맞지 않는 판에 쓰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짜여진 판에서 다른 사람이 하나의 체스 말과 같이 나를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전술' 측면에서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를 찾기는 어렵다. 일단 그 판에서 나와서, 즉 '전략'을 달리해서 내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다른 판을 짜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2. Bargaining Power(교섭력): 높은 교섭력을 지닌 사람이 되기
주니어일 때는 내가 회사에 어떤 value add를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연차를 쌓아 업무경력과 역량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 때가 온다면 그때는 내가 더 큰 교섭력(bargaining power)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내 교섭력을 높일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해 ① optionality가 많은 사람이 되는 방법 - 즉, 더 많은 매력적인 선택지들을 지니고 있어 이 회사에 오지 않아도 아쉬지 않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② 일부러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optionality를 닫는 선택까지 해가며 자기 길을 감으로써 대체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는 방법도 있다. 둘 중에서 적당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때로는 ②와 같은 과감한 선택을 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3. Optionality(선택권) : Optionality를 고려한 선택에 관하여
나는 지금껏 다음 선택의 기로에서 더 많은 선택지를 열어주는 선택을 해오며 살았다. 예일대 교수 윌리엄 데레저위츠도 <공부의 배신>에서 엘리트 학생들이 전능성을 지닌 세포(multipotent)로서 분화되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너무나 와닿는 표현이다.
그는 예일대학 학생들이 줄기세포 같다고 이야기했다. “저와 제 친구들은요, 지구촌 구석구석의 수많은 직업전선으로 전력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어요. 그 대신 우리는 함께 모여 신중하게 움직였어요. 몇 안 되는 잘 닦인 길로, 앞서 찍힌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죠. 그 길을 따라 2년 혹은 4년을 가다 보면 우리가 다시 구분되지 않고, 여전히 가능성이 넘쳐나는 줄기세포가 될 수 있으니까요.”
- 윌리엄 데레저위츠, <공부의 배신> 중에서 -
관련해서 최근 감명 깊게 읽은 블로그 글이 있어 내용을 발췌해 옮겨본다:
[백산님께 조언을 해주신 40대 후반 엔젤투자가, 50대 초반 스타트업 연쇄창업가]
세상은 극소수의 자기 어젠더를 가지고 가치를 만들고 파이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에 얹혀가는 나머지로 구성된다. 파이를 만들고 개념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라. 시장에서 살아남아라. 남의것에 얹혀갈 생각 이제는 그만해라. 평생 직장인의 생활로 갈 뿐이고, 앞으로 전자의 삶 (파이를 만드는) 과는 멀어진다.
[백산님 comment]
정말 맞는 말이다. 평생 더 빛나는 레쥬메를 만들기 위해서, 더 직장인으로서 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다음 선택에 도움이 되는 디딤돌 (Optionality)을 계속 만들어가려는 삶은, 결국 남의 것에 얹혀가는 삶이고, 나만의 탁월성을 만들어가기 어렵다.
자기 어젠다를 갖고 파이를 만들고 개념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이미 남이 만들어 놓은 옵션 가운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optionality)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