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로펌과 달라서
로펌과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 독방의 유무
로펌에 일하다가 사내변호사로 이직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팀원들과 한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꼽아보자면 함께 점심식사도 한다는 거다.
로펌에서는 개인 방에서 일을 했기에, 하루종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비서님이나 함께 일하는 몇몇 변호사님 정도였다. 함께 일을 하더라도 대면해서 대화를 나눌 일은 드물었고, 다른 변호사님들은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가끔 만나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가 다였다. 마음 먹고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출근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한두 차례 건네는 외에 입을 열지 않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식사는 대부분 혼자 또는 외부 친구들과 함께 했고, 회사 변호사님들과는 가끔씩만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런데 지금 회사에서는 이렇게 여덟 명이 한 공간에서 일한다. 이사님과 부서장님은 따로 방이 있어서 거기서 혼자 근무하시고, 가끔씩 우리가 그 방에 들어가서 함께 회의를 한다. 식사는 다른 부서 사람과 약속이 있지 않는 한 팀원분들과 매일 구내식당이나 근처 식당에서 함께 먹는다.
팀원들과 함께 하는 일상
처음에는 아무래도 낯설고 어색한 면이 있었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1). 사무실에서 뭔가를 먹는 소리도, 타자를 치는 소리도, 다른 팀원분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신경이 쓰였다. 독방을 쓸 때는 언제든 내가 먹고 싶은 걸 꺼내서 먹어도 되고, 잠깐 푹신한 의자를 뒤로 젖혀 쉬어도 되고, 급한 일이 있으면 외출을 했다가 돌아와도 되는데. 그런 게 안 되니까 불편하기도 했다. 주초마다 "지난 주말에 뭐하고 쉬셨어요?", 주말이 가까워질 때마다 "이번 주말에는 뭐하실 거예요?" 같은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일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1) 그래서 로펌 생활과 회사 생활을 모두 거쳐본 분들 중에는 독방을 쓰는 것만으로도 월급 100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변호사님도 계신다. 실제로 로펌 중에서도 공용공간을 사용하면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곳이 있다고 듣기도 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이렇게 함께 하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또 이 생활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모양새로 생긴 열 명의 사람들이 일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완벽하게 잘 맞아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래서, 너무 많은 기대를 갖지 않고 느슨하게 관계에 임하니 오히려 이 관계가 너무 좋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신생 회사라 더욱 그렇기는 하지만, 나를 비롯해 1년 전에는 없던 여러 사람들이 새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앞으로 1년 뒤에는 이 조직 구성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열 명이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삶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며 부담없이2)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식사자리에서 소소한 고민들을 풀어놓으면, 그 고민들은 팀원들에게 가닿아 명쾌한 해결책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일터에서가 아니라면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와 경험의 폭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가 셋팅한, 때로는 그 이상의) 공통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관계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사이에서 어쩌면 의례적이라 느껴질 수 있는 질문들에서 시작해,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며 맥락들을 켜켜이 쌓아가고, 그렇게 서로 좀 더 편안한 사이가 되어가는 이 관계가 참 편안하다.
2) 내가 속한 팀은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고,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한 곤란한 질문을 전혀 하지 않는 분위기다. 심지어 입사 후 첫 2개월 동안은 내게 몇 살인지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고 나도 팀원들 중에 누가 나이가 더 많고 적은지를 전혀 모르고 지냈다(물론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사적인 부분을 서로 존중해주고 과도한 관심을 보내는 사람이 없다는 게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추석을 맞아 팀원들에게 책 선물을 하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좋은 물건이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지는데, 특히나 독서가 나의 생활에서 참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좋아하는 사람과는 '좋은 책 읽기'라는 경험을 나누게 된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주변에 가끔 '내가 읽어본 책'을 선물하곤 한다.
추석을 앞두고 회사 팀원분들께 명절 맞이로 뭔가를 챙겨드리고 싶었는데, 마침 책이 좋겠다 싶었다. 팀원들 각자에게 다른 책을 골라 드렸고, 두 권의 책은 각 두 명에게 공통으로 드렸다. 각자의 상황이나 관심사를 알고 있다보니 책을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A4 용지 1/8 정도 크기에 작게 카드를 써서, 책에 끼워 함께 드렸다.
이번 추석은 연휴가 긴만큼 다들 내가 재밌게 읽은 책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다는 마음에 책을 선물했다. 책은 숨가쁜 일상에 숨통을 틔워주는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하니까, 그런 마음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다.
벌써 연휴의 절반 가까이 지나고 있어 살짝 아쉬우면서도, 연휴가 끝나고 볼 팀원들의 얼굴을 뵈면 참 반가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