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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Nov 19. 2021

부다페스트 01

출장 중 첫 번째 도시 걷기

오늘도 새벽 4시가 조금 안되어 눈이 떠졌다. 시차를 적응 못 했다기보다는 내가 너무 일찍 잔다. 업무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함께 한 뒤, 호텔 방 안으로 들어오면 저녁 7시가 조금 넘는다. 샤워를 하고 나면 저녁 8시, 피곤과 졸음이 몰려온다.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나만의 시간을 대충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어, 망설임 없이 침대로 들어간다. 차라리 새벽, 맑은 정신으로 차분하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자. 아무래도 출장 기간 동안 거의 이런 생활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며칠 있진 못했지만 늦가을, 겨울 동안의 부다페스트는 하루 종일 좀 구름이 많고 해가 짧아 4시만 조금 넘어도 어둑한 것이 도시 전반적으로 좀 우울한 느낌이다. 다만 날씨는 한국에 비해 포근한 편이라서, 그렇게 두꺼운 외투를 입지 않아도 길거리를 걷는데 문제없었다. 평야가 넓고, 공기가 맑으며, 기온이 좋은 (여름엔 건조하고, 겨울엔 습한) 이 유럽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왜 그리 많은 전쟁과 살육이 이루어졌는지, 대충 이해가 간다. 


전날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시내 근처를 구경했다.  퇴근 후 이른 저녁, 회사 후배와 함께 호텔에서 강 쪽 방향으로 큰길을 따라 걸어간 뒤, 다뉴브강을 따라 부다성과 어부의 요새, 세체니 다리,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까지 걸어간 뒤 다시 숙소 돌아왔다. 외진 골목은 다소 음침하긴 했지만 뚜벅이 남자 둘인데 무서울 건 없었다. 

운동삼아 서둘러 걷느라 부다페스트의 명소들은 그냥 주마간산으로 지나쳤지만, 퇴근 후 틈틈이 그리고 주말에 다시 진득하게 걸어봐야 한다. 그렇다. 아직은 그냥 탐색 중이다. 그냥 걷고, 그냥 말을 걸어보고, 나와 잘 맞는 도시인지 아닌지, 내가 애정을 품을 수 동네인지 아닌지... 그냥 알아가고 있는, 요즘 말로 '썸을 타고 있는' 단계다. 


헝가리 국회의사당 야경. 소설 '금각사' 속 미사여구가 어울릴 법한 황금빛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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