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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09. 2020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되기 까지.

왜 이제야 알았을까. 나는 영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걸. 

내가 왜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게 대체 언제였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릴 때부터 기록하는 걸 좋아하긴 했다. 중학교 때 좋아했던 오빠에 대한 이야기, 고등학교 때 날 배신한 짝꿍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을 기록해 남겨두었고,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곤 한다. 

아직 그 다지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크고 작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나는 글을 썼다. 

다이어리에, 노트북 메모장에, 휴대폰 어플에, 그때 그때 기분을 남겼고 또 나를 다독이는 글을 썼고 그것들이 위기를 극복하는 큰 도움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33년이 지나다 보니 꽤 많은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그래서 내가 잘 쓰는 사람이라고 착각 하기 시작했나 보다. 


올 해는 무조건 여행 에세이 한 권을 완성하겠다고 다짐 힌 게 벌써 몇 년째 인지 모르겠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다짐을 하지도 않게 되었다. 

사실 내가 집착한 건 글쓰기보다는 '출간'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이미 탄탄한 글쓰기 능력을 갖춘 예비 작가들도 결국에 잡지 못하는 것이 '출간' 기회인데, 왜 나는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만 완성하면 책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글'을 위한 여행은 이미 두 번 다녀왔다. 재작년에는 바르셀로나를, 작년에는 호주를 다녀왔다. 

특히 작년 호주 여행 같은 경우는 태블릿 PC를 가지고 다니며 매일 하루 끝에 원고를 썼다. 정말 작정하고 다녀온 여행이었다. 

쓸거리도 많았고 사진도 많이 찍어왔지만 결국 반도 가지 못하고 브런치 매거진은 중단되었다. 능력 부족이다. 지금도 볼 때마다 비공개로 돌려놓고 싶을 만큼 어설픈 글이다. 


'일기는 일기장에'

라는 말이 있다.

일기장에 쓸만한 이야기로 책을 내려고 했으니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정말 꽤 오랜 시간 여행작가가 되고 싶었다. 

사진도 잘 못 찍고 꼼꼼한 디테일도 살리지 못하는 나 같은 인간이 여행 글쓰기를 한다고? 

단지 '외국에 살고 있는 항공사 승무원'이라는 현재 상황을 살려 책을 내고자 했던 욕심이었다. 

헛된 꿈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내가 비행을 그만두더라도 '글'로 특히 '여행작가'로 먹고 살 일은 없을 거다. 


이제 솔직해지자. 

난 아침에 늦잠 자고 커피나 마시고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에 맥주나 한잔하는 게 좋은 게으른 여행자라는 거. 

그런 여행에는 책 한 권에 담을 만한 정보와 감동은 없다는 것. 

난 '퇴사 후 세계 일주'를 할만한 배짱도 마음도 없고, '20대 청춘의 배낭여행'을 하기엔 너무 늙었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일은 '기록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기록하는 일은 계속해보려고 한다.

'일기는 일기장에'쓰면 그만이지만. 

이런 비루한 글에 '구독'버튼을 눌러준 17명을 위해서 라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마음을 기록해 보아야겠다. 

매거진을 만든다거나 하는 일은 안 할 것 같다. 


작년 말, 여행 작가가 되고 싶다던 내 고민을 들으시고는 친히 여행 에세이를 선물해주신 우리 목사님께는 조금 죄송스럽긴 하다. 

작년 12월에 했던 다짐을 포기하기에 3월은 너무 이르지 않나 싶지만 어떡해요 목사님. 전 제가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볼게요. 


씁쓸하기도 후련하기도 한 마무리다. 

그래도 털어버리자. 

여행작가로서는 재능이 없을지 몰라도 일기 쓰는 일에는 재능이 있을 수도 있잖아? 

요즘 유튜브도 일상 유튜버가 대세인걸 보면 언젠가는 나도.. 

..라고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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