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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pr 12. 2020

목표의 힘

장기화된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내가 살고 있는 두바이도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

항상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던 국제 도시 두바이가 항공기 여객 운송을 중단한지도 벌써 몇 주가 되었다.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던 시간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고 있다.

이제는 물이라도 한 병 사러 외출을 하려고 하면 온라인으로 퍼밋(permit; 허가증)을 신청해야 한다.

거주자 이름, 주소, 아이디 넘버 등 개인 정보와 출발지 및 도착지, 출발 시간 도착 시간 등을 기재해 퍼밋을 신청하면 보통 5-10분 내로 승인 SMS가 온다.


이런 식으로 승인을 요청하고 허가를 받는다


'movement permit'이라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단어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것도 익숙해졌다.

'커피 필터도 다 떨어졌고 과일도 사야 하니까 오늘은 퍼밋을 신청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금세 당연하게 되었다.




말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24시간 통행금지가 현실이 되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런 얘길 했었다.

'만약에 정말 만~~ 약에 라도 두바이에 통행금지가 생긴다면 우린 전세기를 타고 라도 여길 떠나야 할 거야.'

그만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이럴 수가.

그것이 바로 현실이 되었고 요즘은 24시간 경찰차가 우리 동네를 순찰한다.

하하하.


그러데 막상 이렇게 된 나의 일상이 우울과 절망으로 뒤덮이지 않았다는 거는 조금 놀랍다.

흔히 얘기하듯 사람은 언제나 그랬듯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존재인 걸까?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다.


어떤 힘든 상황이라도 희망이 있으면 사람은 살 수 있다고 하잖아.

희망이 없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지금 내 상황이 삶과 죽음까지 언급할 건 아니지만, 적어도 범 지구적 위기의 순간에 내가 깨달은 바는 사람은 결국 목표과 희망으로 어떻게든 기쁘게 살아낼 수 있다는 거다.




장황한 서두에 어울리지 않는 나의 그 대단한 목표는 바로 '체중감량'이다...

누군가는 시답잖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테고 나와 비슷한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끄덕 할 테지.

그놈에 다이어트.

왜 나란 인간은 날 때부터 마른 체질이 아니었던 걸까.

왜 나의 지방 세포들은 유독 복부에만 집중된 걸까? 애초부터 고루고루 퍼져 있었으면 좋았잖아.

보여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이라는...거는 잘 모르겠고요.

그냥 날씬해지고 싶어요. 그래야 못난 이목구비에 조금이라도 더 예뻐질거 같거든요.


통통한 채로 살아오다가 대학교 3학년쯤 각성하고 1차 감량을 했고 그 이후로는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를 했다.

절대 날씬한 몸이 아닌 보통의 몸으로.

관대한 누군가는 네가 살을 왜 빼?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난 너 같은 통통한 스타일이 좋더라(하..때릴까..) 하는 어정쩡한 보통의 몸으로 꽤 오랜 기간 살아가고 있다가,


최근에 다시 한차례 감량을 했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살이 많이 빠졌다(<-내 기준 최고의 외모 칭찬)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창 외모에 신경 쓸 나이(33세) 아닌가?

그때 당시 화장법도 바꾸고 나름 자신감이 많이 생겼었다.


하지만 너무 방심한 탓인지.

연말이었던 탓인지.

한국 휴가가 많았던 탓인지.

내가 타고난 게 어리석은 탓인지.

고삐 풀고 먹은 탓인지 여튼 금세 다시 살이 찌고 말았다.


칭찬은 달콤했다.

하지만 친한 오빠가 내 턱살을 꼬집고 흔들며 '으이구~ 한국 가서 또 잔뜩 먹었구나'하는 순간 난 깨달았다.


'다시 쪘구나^^'




여튼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부터 나는 나름 다이어트를 해오고 있었다.

운동도 하고 식단도 조절했지만 외출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밖순이' 습성 때문에 종종 외식도 하고 술자리도 가졌었다.


그러나 점점 두바이도 상황이 심각해지고 개개인은 집안으로만 고립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원래 100이었다면 거기서 50, 또 50에서 10으로 결국은 1로 줄어들게 되자 내 생활의 목표는 더더욱 한 가지로 좁아지게되었다.

이런 순간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완벽하게 잘할 수 있는 건 체중 감량을 위한 운동과 식단 조절뿐이었다.

그동안 날씬한 몸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는 언제나 내 안에 차고 넘쳤지만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실현되기 어려웠었다.


욕구가 아무리 넘쳐도 환경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의지박약 게으름뱅이에게는 힘든 게 다이어트다.

하지만 살다 살다 참, 이런 완벽한 조건이 세팅되어진 건 처음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모든 게 내 '의지'에 달려진 느낌이다.


피곤한 스케줄로 인해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환경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맛있는 거 먹자고 불러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배달 조차도 8시 이후에는 금지 되어 있으니, 충동 야식 주문 역시 불가능.

모든 건 식사를 차리는 내 손에 달려있고 남아돌아 주체하지 못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는 내 판단에 달려있다.


핑계 댈 방해 요소가 전혀 사라져 버린 이 시점에도 내가 해내지 못한 다면 어쩌겠어?




목표가 주는 힘은 정말 크다.

'이동'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나를 웃게 하고 실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지금의 목표라고 해봐야 현재 몸무게에서 '3키로 감량하는 것' 정도의 시시한 것이지만,

신기하게도 목표를 달성한 내 모습이 생생하게 기대된다.


누군가에게는 삼시세끼 밥만 챙겨 먹고 아무런 생산활동을 하지 않은 하루라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건강한 식단을 적정량 섭취하고 간식으로 쓸데없는 칼로리를 더하지 않은 꽤 의미 있는 하루였다는 것이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일이 기대된다.

내일이 기대된다는 건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막상 되고 싶은 모습이 되어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결국은 다음 스텝을 고민한다.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진짜 목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를 일으키고 움직이게 하는 진짜 목표를 찾으면 된다.

(물론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그대로 살면 된다. 나도 지난 몇 년을 그렇게 살았고 만족했다.)


지금 두바이에서의 내 삶이 좋으니 여기서 결혼을 하자->실패

요즘 공기업은 블라인드 채용이라든데 NCS를 준비하자->실패

외국인들 특징은 잘 아니까 한국에서 관광일을 하자. 관광통역안내사 준비-> 실패


어영부영했던 다짐이 결국 다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결국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동으로 이어지는 목표를 가진 요즘은.. 뭐랄까.

행복하다는 말은 할 수 없겠지만(행복하다고 말하긴 너무 많은 자유를 박탈당했다)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니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거다.




예전에 '연예인 다이어트'라고 흔히 불리는 식단들을 보면서 항상 생각했다.


'나도 쟤네들처럼 매일 출근 안 해도 되면 얼마든지 하겠다!!'


그러던 내가 정말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증명할 차례인가?

그렇다면 도저언.




여튼 모두가 힘든 요즘 같은 때에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목표를 찾았다는 게 참 다행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모든 걸 할 수 있을 거 같다가도 또 결국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마음은 뭘까?

많은 걸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내말은.. 지금을 너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결국에 인생은 비슷한 사이클로 돌아가는데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좀 더 많은 것을 좀 더 길게 잃어버린 것뿐이지 우리가 그동안 겪어오던 크고 작은 상실 중의 하나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또 보냈다.


너무 아깝고 소중한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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