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14년도 크리스마스 즈음에 런던을 처음 방문하고 생각했다. 난 꼭 여기서 살게 될 거야.
18년 가을, 대학 졸업과 함께 런던에서 살게 되었다. 대학원에 다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자라고 공부한 경영대 졸업생이 아카데이아에 머무를 계획 없이 대학원 유학을 떠나는 건 흔치 않은 경우였기 때문에 주변에선 내 결정을 듣으면 ‘근데 왜?’라고 물었다.
내겐 간단한 이유였지만 그걸 남들에게 얘기하면 뜬구름 잡는 정신 나간 애로 보일까 봐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그건 런던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직장인일 거면 런던에서 일하는 직장인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영국의 학위가 있는데 보다 수월했다.
고작 도시 하나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확실한 우선순위가 있었다. 어떠한 직업을 가져도 그 배경이 내가 사랑하는 도시면 좀 더 행복할 것이다. 그게 나의 우선순위였고, 그래서 그걸 위해 대학원에 가게 됐다.
그렇게 다시 오게 된 런던, 그리고 런던이 더 좋아졌다.
침대 하나에 책상 하나로 꽉 차 버린 내 작은 방.
창문이 벽 한가운데에 아주 적당하게 나 있어서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어놓으면 날씨와 하늘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오던 내 하얗고 작은 방.
누군가는 비가 자주 오는 날씨 때문에 런던이 별로라고 하지만, 내게는 그런 비 오는 날이 좋았다. 비가 오면 친구들과는 불평을 하다가도, 그 비를 맞으면서 피하면서 비가 왔다 구름이 꼈다 해가 났다 하는 사이에 내 마음의 우울에 빠질 새도 없었다.
18년도 런던에서는 숨을 쉴 수 있었다.
심리적인 무게감은 엄청났다. 대학원만 가면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에 어설프게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면 지는 것 같았다. 석사 학위를 가지고 ‘네 머리가 커져서’ 돌아오면 갈 수 있는 자리가 마땅치 않아 더 우울해질 것이란 말에 보란 듯 난 더 커진 머리를 들고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해야 했다. 풀타임 학생이자 취준생으로서, 올해 안에 취업이 안되면 x 된다는 생각 1/3, 잘 될 거라는 생각 1/4, 그리고 나머지는 다 안되면 내 인생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냈다.
그러면서도 집, 학교 밖으로 나가면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내가 원래 이렇게 폐를 이용해 숨을 쉬었던가 싶을 정도로 허파에 차가운 숨이 가득하게 쉬어졌다. 그러면 그 순간에는 확실히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