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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Aug 10. 2024

나의 가족, 나의 애옹이

INTJ 집사와 IIII  고양이

그렇게 나는 집사가 되었고, 애옹이는 나의 가족이 되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선택하지 않고 그저 태어나보니 내게 주어진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름이나 가족. 


내 이름을 굳이 밝히진 않겠지만 모음 'ㅡ'가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매우 흔한 발음이지만 영문자 표기가 아주 애매해지는 그 발음. 여권에는 'eu'로 표기되어 있으나 과연 'eu'가 정말 'ㅡ'일까? 한국인은 이름에 'eu'철자가 들어간 걸 보면 거의 대부분 'ㅡ'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이 'eu'를 보면 'ㅡ'라고 발음하는 경우는 드물다. e와 u를 따로 발음해서 'ㅣ,ㅜ' , 혹은, 'ㅣ,ㅓ'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내가 나보니 갖게 된 나의 이름은, 사주에 역마살을 세 개나 가지고 태어나서 평생 곳곳을 떠돌 것이라는 나의 운명과는 사뭇 맞지 않았고, 내 이름은 늘 외국인들에 의해서 1) 파괴되었고 2) 기억되지 못했다. 


내 이름이 파괴되는 것은 뭐 그렇다 치자. 내게 있어 더 큰 문제는 내 이름이 잘 기억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름이 불리기 쉬어야 자꾸 불리고, 자꾸 불려야 기억이 나지. 외국인들은 내 이름이 어려워서 부르기를 꺼렸고, 그렇게 불리지 않은 나의 이름은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외국 생활해 본 사람들은 공감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너무 겸손하게 굴어서 내가 묻히면 안 된다. 내가 스스로의 장점을 늘 적극적으로 알려서 누구나 나를 알게 해야 한다. 결국 나는 회사에 '공식적으로 회사 시스템에 사용되는 이름을 바꾸겠다'는 이메일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에게 내가 지어준 이름을 모두가 불러주자 그 기분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짜릿하기도 했다. 이유 모를 독립심이 내 안에서 생겨났고, 메일 하단에 Best regards, 하고 내 이름을 적을 때마다 내가 지어준 내 이름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나기도 했다. 내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자 - 아, 그건 정말 내가 내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해당이 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또 태어나면서 내게 주어진 것, 내 가족. 솔직히 애옹이를 집에 데려올 때는 우리가 '가족이 된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씻으러 가도 애옹이가 졸졸, 부엌에 가도 내 뒤를 졸졸, 그저 하루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애옹거릴 때, 내가 애옹이의 엄마가 되었고, 우린 가족이 된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나의 가족. 그건 우선 엄청난 책임감을 의미했다. 그리고 무한한 사랑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이 되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가족이 되고 싶을 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했다. 


내 부모님은 자라면서 늘 나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셨다. 성인이 될 때까지 대한민국 그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모범생'으로 자라온 나에게 그 넘치는 사랑은 때로는 성적에 대한 부담과 더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컸다는 것을 안다. 자라고 나니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것도 그중 하나다. 그렇게 사랑을 받았기에 이제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내 옆의 애옹이에게 나는 사랑을 끝없이 나눠줄 수 있다. 내가 만났던 친구는 내게 늘 자신은 사랑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에게 내 사랑을 계속해서 퍼주면서 생각했다. 나는 크면서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이제 아무리 사랑을 나눠줘도 내 안에 사랑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 사랑을 나의 가족 애옹이에게도 계속해서 나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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