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J 집사와 IIII 고양이
그렇게 나는 집사가 되었고, 애옹이는 나의 가족이 되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선택하지 않고 그저 태어나보니 내게 주어진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름이나 가족.
내 이름을 굳이 밝히진 않겠지만 모음 'ㅡ'가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매우 흔한 발음이지만 영문자 표기가 아주 애매해지는 그 발음. 여권에는 'eu'로 표기되어 있으나 과연 'eu'가 정말 'ㅡ'일까? 한국인은 이름에 'eu'철자가 들어간 걸 보면 거의 대부분 'ㅡ'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이 'eu'를 보면 'ㅡ'라고 발음하는 경우는 드물다. e와 u를 따로 발음해서 'ㅣ,ㅜ' , 혹은, 'ㅣ,ㅓ'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내가 나보니 갖게 된 나의 이름은, 사주에 역마살을 세 개나 가지고 태어나서 평생 곳곳을 떠돌 것이라는 나의 운명과는 사뭇 맞지 않았고, 내 이름은 늘 외국인들에 의해서 1) 파괴되었고 2) 기억되지 못했다.
내 이름이 파괴되는 것은 뭐 그렇다 치자. 내게 있어 더 큰 문제는 내 이름이 잘 기억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름이 불리기 쉬어야 자꾸 불리고, 자꾸 불려야 기억이 나지. 외국인들은 내 이름이 어려워서 부르기를 꺼렸고, 그렇게 불리지 않은 나의 이름은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외국 생활해 본 사람들은 공감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너무 겸손하게 굴어서 내가 묻히면 안 된다. 내가 스스로의 장점을 늘 적극적으로 알려서 누구나 나를 알게 해야 한다. 결국 나는 회사에 '공식적으로 회사 시스템에 사용되는 이름을 바꾸겠다'는 이메일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에게 내가 지어준 이름을 모두가 불러주자 그 기분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짜릿하기도 했다. 이유 모를 독립심이 내 안에서 생겨났고, 메일 하단에 Best regards, 하고 내 이름을 적을 때마다 내가 지어준 내 이름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나기도 했다. 내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자 - 아, 그건 정말 내가 내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해당이 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또 태어나면서 내게 주어진 것, 내 가족. 솔직히 애옹이를 집에 데려올 때는 우리가 '가족이 된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씻으러 가도 애옹이가 졸졸, 부엌에 가도 내 뒤를 졸졸, 그저 하루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애옹거릴 때, 내가 애옹이의 엄마가 되었고, 우린 가족이 된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나의 가족. 그건 우선 엄청난 책임감을 의미했다. 그리고 무한한 사랑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이 되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가족이 되고 싶을 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했다.
내 부모님은 자라면서 늘 나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셨다. 성인이 될 때까지 대한민국 그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모범생'으로 자라온 나에게 그 넘치는 사랑은 때로는 성적에 대한 부담과 더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컸다는 것을 안다. 자라고 나니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것도 그중 하나다. 그렇게 사랑을 받았기에 이제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내 옆의 애옹이에게 나는 사랑을 끝없이 나눠줄 수 있다. 내가 만났던 친구는 내게 늘 자신은 사랑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에게 내 사랑을 계속해서 퍼주면서 생각했다. 나는 크면서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이제 아무리 사랑을 나눠줘도 내 안에 사랑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 사랑을 나의 가족 애옹이에게도 계속해서 나눠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