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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는지 정말 모를까?

그 또한 가풍이거늘

by Aheajigi

얼마 전 상당히 신경쓰이는 이벤트가 발생했다. 나로 인해 기인한 것이 아니기에 강 건너 불구경하 듯이 넘기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하지는 못했다.

결국 아주 민감하고 위태로운 일에 개입을 하고야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알 수 없고 문제 행동만 드러났다. 서사가 어찌하였든 간에 납득할 논리가 될 사안도 아니었다.

남자아이 하나가 여자 아이 여럿의 가슴을 터치한 사고를 만들었다. 꼬맹이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 넘기는 이도 있을 테지만 이건 그리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특정 아이는 더군다나 여러 번 피해를 입었다 했다. 왜 초기에 알리지 않았는지 물어보니 양육자가 그래도 어린아이라서 무시하고 넘기면 된다 타이르는 과정이 있었긴 했다. 이 녀석도 참다 참다 내게 괴롭다며 말한 것은 불행인가 다행인가 싶었다. 이것이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 시작점이었다.


사건을 일으킨 아이의 양육자를 호출했다.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다 짧게 말했더니 그것이 사실인지 아이에게 확인한다. 중언부언 아이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듯이 핑계를 이어갔다. 늘 이런 부류의 생명체들이 하는 변명 레퍼토리는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내지는 자기 말고 누구도 그랬다로 물타기를 시도한다. 이 아이도 내가 예측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 이유를 둘러대도 여자 아이들의 가슴을 만졌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한 아이는 정확히 손가락으로 터치했으니 사실 변명의 여지 또한 없었다. 할 때까지 해봐라 싶어 난 내버려 두고 지켜만 보았다.

문제를 일으킨 아이와 양육자를 교실에서 만나게 한 이유는 돌발행동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혼날지 모른다는 아이 심리의 압박에 어떤 우발적 행동을 초래할지 몰라 안심시키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양육자에게 크게 혼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는지 이 아이의 표정은 참으로 평온해 보였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은 어른들의 몫인가 싶었다.


미안하다 말하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필한다. 피해 입은 아이들 양육자와 통화한 결과를 대강 알려주며 시건이 어찌 될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했다. 미안하다 하시니 그 점은 상대측에 전달하겠다 하며 한 시간 남짓한 상담을 마무리했다.

이쪽저쪽 면대면 대화와 전화를 두어 시간 하다 보니 머리는 지끈지끈 아팠고 목은 타들어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개입하는 것을 정말 불편해했는데 또 발을 담그니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일렁였다.

수차례 통화를 통해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 톤이 격양되지 않았음에 그래도 잘 해결이 될지 모르겠다는 한줄기 희망을 품었다.


그렇게 퇴근 후 저녁시간 이 소용돌이를 만든 아이의 양육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요지는 자기 아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대 아이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고 옷에 발자국까지 있다 했다. 아이가 그런 것을 막는 과정에서 우연히 손과 가슴이 스쳤다는 참 신박한 논리였다. 이게 꼬맹이 아이디어인지 양육자가 쉴드를 치기 위한 고심인지 의아했다. 본인 자녀가 왜 그러는지 모른다 했던 양육자의 표정이 떠오르며 난 왜 그리 자랐는지 얼개가 그려졌다. 핑계 대기는 가풍이지 싶었다.

긴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럴 필요 또한 전혀 없었다. 사안의 실체가 그리 궁금하시다면 정식 절차를 밟아 조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 그것을 원하신다고 말하는 것인지 되물었다.

그제야 아차 싶었나 지금 했던 말은 취소한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피해 입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 보다는 내 아이가 입을 피해만 생각하는 전형적인 양육자를 보고 있자니 내가 왜 중간에서 조율했나 싶어 긴 한숨만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피해 입은 아이들은 해맑게 잘 논다. 사건을 일으킨 아이의 행동 또한 이전과 다르지 않다. 피해 양육자들이 이번까지는 용서하겠다하여 표면적으로는 잘 수습이 되었다.


이 교실에서 아슬아슬 불안 불안한 것은 나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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