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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에 Jun 02. 2020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9AND LAB '출발 드로잉 여행' 도전 이야기


두 시간어치의 인생

몇년 전, 우연히 보게 된 박찬욱 감독의 손글씨를 그냥 스쳐 보낼 수 없었다. 저 문장은 '영화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을 나무라는 것인지 아닌지 애매한 문장이어서 많은 여운을 남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영화의 소재 따위 될 수 없는 무난한 평균수명 86.2세 노인이 되어 살아가는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불나방처럼 열정적인 두 시간을 소진하고 일찍 생을 마감할 것인지. 이런 의미 없는 질문을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저건 영화감독이 쓴 글이지!' 엄밀히 말하면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 아닌가!


사실 명확한 메시지와 공감할 수 있는 감동을 품은 두 시간의 편집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일이다. 영화감독은 두 시간 분량 남짓의 작품을 만들어낼 때 몇백 시간이 넘는 촬영 시간을 거치고 배우들의 연기가 끝난 후 조용히 편집에 몰두한다. 자르고 붙이고 자르고 붙이고를 반복하고 거기에 색을 덧입히고 음악을 씌운다. 길고 긴 제작기간을 끝내고 나면 마케팅도 하고 홍보도 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관객에게 도달한다. 두 시간짜리 영화를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실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따라서 영화같은 삶은 사실 엄청난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이 편집되어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되는 것.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끝에서 비로소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적어도 두 시간짜리로 구성될 수 있는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무색무취인 내 나머지 삶도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결국 삶이란 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누구보다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두 시간에 인생을 압축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법

이런 깨달음 후에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를 잘 알지도 못하고, 글에 더 익숙한 나는 우선 메시지에 집중했다.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것을 느꼈고 배웠는지. 이 영화를 보기 전과 후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글로 옮겨적곤 했다. 이때의 나는 영화라는 일종의 텍스트를 '이성적'으로 읽어내고 비평하려는 독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 많은 백수 한량(이라 쓰고 대학생이라 읽는) 시절에나 가능했던 얘기었다. 직장을 가진 후로는 그 시간마저 부족했다.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헐레벌떡 내 일상을 살아내다보니, 화면 너머 누군가의 이야기도 패스트푸드 먹듯이 헐레벌떡 소비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직장생활 4년차에 접어드는 어느 날 문득, 이런 내 일상이 조금 서글펐다. 영화 같은 두 시간의 삶을 살고 싶었던 예전의 내가 너무 멀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영화를 그리는 모임에 끌려 망원동의 작은 벙커의 찾아가 보게 되었다.


거창하게 적어놓았지만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림>과 <영화>라는 두 단어가 나란히 써져있었을 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반면 걱정도 앞섰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손재주 있는 특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의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고 정아니다 싶으면 도망쳐야지 하는 심정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참,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기분인데, <출발 드로잉 여행>에서 던져주는 '내가 좋아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기'라는 미션이 주어지는 순간 영화가 다르게 보였다. 이전 같으면 휙휙 지나쳤을 장면들을 자세하게 보기 시작했다. 인물들에 색깔이 입혀지고 움직임이 보였다. 장면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져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장면장면 연결되어 하나의 작품이 되고 나라는 관객에게 도달하여 의미로 남았다. 그 무수한 장면은 어떤 메시지와 감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섬세하게 그려진 것이었음을 알게되었다. 그 중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을지 고민했고 그렇게 고심한 장면은 내 손을 거쳐서 다시 나만의 그림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선 하나, 색 하나를 덧입히면서 나는 다시금 영화를 곱씹어 음미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문자과 글이 아닌, 이미지로 좋아하는 순간을 기억에 각인시키는 방법을 알게되었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문자로만 표현되었던 나의 생각에 알록달록 색채가 녹아드는 기분이 묘하면서 좋았다. 영화 속 아이들이 이런 표정을 지었구나, 이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네.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따뜻한 감성을 그림에 몽글몽글 녹아내렸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에는 나도 감독이었고 창작자였다.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키는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더 애틋했다.


(과정 1) 고심해서 선정한 장면을 먹지와 연필을 이용해 본을 뜬 다음 마카와 색연필을 사용하여 그리면 된다
(과정 2) 밑바탕이 되는 색을 깔고 하나하나 색을 덧입힌다


그렇게 완성한 내 그림은 서툴고 삐뚤빼뚤했지만 예뻤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걸려있던 문구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는 내 서툰 그림에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뛰어노는 사연 많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가난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삶은 얼핏 보기에 이해하기 어렵다. 다소 대책 없는 홈리스 엄마인 핼리의 행동을 쉽게 비난할 수도 있고 화려하고 예쁜 색감에 속아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 대신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자세히 보고 싶었다. 얼핏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행동에도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섣부른 판단을 잠깐 멈추고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을 때 이 아이들이 참 애틋했다. 비록 가상의 인물이지만 이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삶이라는 것, 저마다의 인생이라는 것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각자의 방식으로 마주하고 짊어지며 사는 거겠지.


개인적으로는 이런 이해의 순간이 참 소중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순간을 잃어가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렇게 일상을 살아내면서 어린 시절 품었던 순수한 열망은 조금씩 깍여간다. 무뎌져가는 마음을 받아들이며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을 꾸역꾸역 살아낸다. 바쁘고 어딘가를 향해 쫓아가는 사람들에게 시간와 애를 써가며 영화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심지어 그림까지 남기는 시간을 보내는 것, 타인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찌보면 사치같은 시간일 수 있다. 오히려 무뎌진 열정을 가지고 그럭저럭 나의 삶을 꾸려가는 게 어쩌면 삶을 수월하게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 축적되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삶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게 만드는 의미있는 사치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멀리 퍼져나간다면 이 팍팍한 세상도 조금은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는 얄팍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림 그리는 것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그림을 완성하기 전의 나와 후의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이렇게 거창한 말을 늘어놓게 되었다. 그래서 첫 번째 세션을 끝내고 48색 색연필을 주문했다. 그리고 좋아했던 영화를 하나둘씩 떠올려봤다. 하나씩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어 졌다. 그렇게 두 시간으로 압축된 타인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소하고 쉬운 방법을 알게 되어 꽤나 기쁘다. 가끔 뜻대로 안 되어서 화가 나기도 하고 가끔 울적한 내 삶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너는 어떤 삶의 순간을 마주할 것이냐고. 그렇게 질문하고 답하면 삐뚤빼뚤한 내 그림처럼 내 삶도 어느새 예쁘게 보인다. 그래서 다행이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과 자비심과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가득한 감독.
-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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