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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Mar 05. 2020

엄마와 가방

호강. 엄마가 생각하는 호강의 크기가 너무 작고 볼품없어서 속이 상했다.

엄마는 샤넬을 모른다. 몇 년 전 엄마의 생일에 샤넬 화장품을 선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아무리 명품에 관심이 없다한들 어떻게 샤넬을 모를 수 있을까. 그럼 루이비통은 아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코미디 프로 보면 갈색 가방 들고 똥, 똥 거리잖아. 그게 루이비통 가지고 말장난해서 사람들이 웃는 거잖아.”

엄마는 그게 그래서 우스운 거였냐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샤넬 립스틱을 발랐다. 하얀 피부와 참 잘 어울렸다. 목욕탕에서 산 기초 화장품 몇 개가 전부인 단출한 화장대 위에 샤넬 립스틱이 올라갔다. 엄마의 화장대가 왠지 더 초라해 보였다.


샤넬 립스틱을 바른 우리 엄마를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립스틱만 빼고 모든 것이 남루했다. 특히 엄마가 입고 있는 옷이 그랬다. 내가 오래전 산 니트였다. 유행이 금방 지나 얼마 입지 않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는데, 언제부터 엄마의 옷이 된 걸까. 촌스러운 비즈 디테일들이 내 속도 모르고 반짝거렸다.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짠하기만 한 엄마의 물건들 중에서 그렇지 않은 것을 하나라도 찾아보려고 애를 쓰다가 엄마의 가방을 보았을 때,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낡은 고동색 가방엔 알록달록한 짝퉁 루이비통 문양이 가득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저런 조잡한 가방을 메고 친구들을 만나고 교회에 나가고 장을 보는 엄마가 떠올라 가슴이 내려앉았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은 자신들의 엄마에게 빌린 명품 가방이며 값비싼 옷을 곧 잘 걸치고 나왔다. 그들의 엄마를 상상하면 드라마 속 기품 있는 사모님이 떠올랐다. 그런 날이면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을 단 돈 만 원에 샀다며 밝게 웃는 우리 엄마가 오랫동안 아른거렸다. 우리 엄마도 언젠가는 진짜로 고급스러운 옷으로 옷장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그때부터 엄마한테 꼭 좋고 비싼 것들을 사드리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한참 뒤늦게 선물한 명품이라는 것이 고작 립스틱이라니, 아무래도 나는 나쁜 딸이다.     


“엄마 가방 하나 사러 가자.”     


몇 번을 고사하던 엄마는 내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나갈 채비를 했다. 시내로 나가는 동안 통장 잔고를 헤아려 보았다. 이미 빠듯한 내 생활에서 엄마 가방 살 돈 아낀다고 더 편해질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차라리 홀가분했다.


시내에는 아웃렛도, 백화점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대형마트에 있는 잡화매장에 갔다. 한참을 둘러보던 엄마가 갈색의 아담한 가방 앞에서 머뭇대었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내가 가격을 묻자 직원이 가방 지퍼 안에 있던 가격표를 꺼내 확인시켜주었다. 20 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순간 엄마는 죽은 새라도 본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한 걸음 물러나더니 이런 거 시장 가면 5만 원도 안 주고 살 수 있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일단 한 번 들어보라며 엄마 손에 가방을 들리자 이제는 엄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지퍼가 불편할 것 같고, 너무 무거운 것 같고, 소재가 약해 보인다고.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엄마와 나를 번갈아보며 불편해하는 직원에게 미안해서 얼른 계산하려고 지갑을 꺼내는데 엄마가 거칠게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 바람에 휘청대면서 진열된 물건들을 떨어뜨렸다. 쇼핑하던 다른 고객들이 우리 쪽을 흘끔 대었다.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올리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분했다. 엄마의 큰 목소리가, 민망해하는 직원이, 돈 앞에서 벌벌 떠는 엄마가, 엄마의 짝퉁 가방이, 쪽팔려하는 내가. 모든 것들이 분하고 서러웠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계산을 했다. 엄마는 건네는 가방을 눈치 보며 안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가 고맙다는 말로 정적을 깼다. 그러면서 딸 덕에 호강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호강. 엄마가 생각하는 호강의 크기가 너무 작고 볼품없어서 속이 상했다. 차마 버리지 못한 엄마의 짝퉁 가방을 매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내가 얼른 돈 벌어서 진짜 명품 가방 선물할게.” 

명품가방을 든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어떤 가방을 들려 보아도 성에 차지 않았다.         





월간 에세이 3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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